어느 날 밝혀진 시장님의 숨겨진 비밀 – 매리온 배리 이야기

Marion Barry
dbking / CC BY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2.0)

매리온 배리 (Marion Barry) 앞에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는 그 때 미국 수도 워싱턴의 시장이었다. 흑인들이 많이 사는 워싱턴 시에서 그는 워낙 대중적 인기가 있어서 정치적으로 그를 대적할 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워싱턴의 지역 언론들은 그를 “평생 시장 (Mayor for life)”이라고 불렀는데, 그 말은 그가 원한다면 배리가 죽을 때까지 시장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가 이렇게 높은 인기를 누린 것은 그 동안 인권 운동가로서 그가 살아온 삶이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인종 차별 문제와 인권 문제를 겪으며 인권 운동가로서 성장했다.

그는 결국 마치지는 못했지만, 어려운 형편에서도 테네시 주립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정도로 공부에 대한 욕심도 컸다. 그는 학교에서 부터 틈틈이 인권 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여 이미 이 분야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처럼 인권운동 분야에서 쌓은 명성을 바탕으로 그는 워싱턴 시 시의원이 되었고 마침내 1978년에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시장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그 이후 그는 시장 선거에 무려 세 번이나 연달아 승리하여 워싱턴시를 그의 왕국으로 만들었다.

호텔 방에서 선 채로 마약을 흡입하는 베리 시장을 찍은 사진

그러던 중 1990년이 되자 철옹성 같던 매리온 배리의 왕국이 갑자기 무너지게 되었다. 연방 수사국 (FBI)이 마약 수사를 하던 중 매리온 배리와 그의 여자 친구가 호텔 방에서 마약을 하는 현장을 덮친 것이다. 그가 체포되자 여자 친구는 재판 중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고 배리는 결국 6개월 실형을 언도받았다.

알고 보니 배리는 오랫동안 마약을 상습적으로 사용해 왔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마약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대책을 소리 높여 주장했다. 그는 이런 모순된 행동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았다. 주변 사람들도 마치 배리의 마약 문제를 알지 못하는 듯 행동했으며 서로 눈감아 주었다. 한 번 권력의 달콤한 맛을 본 주변 사람들은 논리고 원칙이고 간에 서로 쉬쉬하며 문제를 덮어주었던 것이다.

심지어 이때 흑인 여성 단체들은 재판 중에 검찰에 협조한 배리의 여자 친구를 비난했다. “전도가 유망한 흑인 남자는 흑인 여자들이 지켜주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혹은 “그깟 마약 문제 때문에 이렇게 유능한 시장을 매장시킬 수는 없다” 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훗날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막강한 권력에 취해 “감히 나를..”이라고 생각했던 배리는 이렇게 곤욕을 치렀다. 오만했던 배리의 이야기는 그 뒤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과 같은 사건들에서 자주 되풀이 되었다. 권력에 취하면 스스로를 “무적의 신적 존재” 로 생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정치인들의 운명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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