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날 “헬조선”이란 무서운 말이 우리 사회에서 주목을 받는 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헬조선은 우리 나라의 현실을 지옥으로 비하하는 말이지만 특히 현실에 절망한 일부 젊은이들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절망하는 현실에 대해 단지 그들이 나약하다고 질책할 수 만은 없다.
세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젊은이들은 부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이처럼 예술에서 금지된 사랑이라는 소재는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도 7,80년대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금지된 사랑을 다룬 많은 작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영화나 드라마는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부모가 반대한다고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도 없겠지만 사실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굳이 하겠다는 청년들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이들도 안다. 연애가 낭만이라면 결혼은 현실이다.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에게는 날로 증가하는 결혼 비용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도 젊은이들은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버젓한 집을 장만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결혼 후에도 부모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부모의 집 근처에 살면서 육아 문제 등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집을 마련할 때에도 또 훗날 유산을 받아야 커다란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부모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결혼은 마치 인생이라는 100 미터 달리기에서 남들보다 몇 십 미터 뒤에서 출발하는 것과 같다. 현실의 어려움을 잘 아는 젊은이들은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무릅쓰는 그런 위험한 행동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요새 젊은이들은 자기의 의지가 뚜렷하다고 하지만 만약 부모가 결혼에 반대하면 지금 사귀는 사람과 헤어지겠다는 사람들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이다. 젊은이들이 이런 선택을 하는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험한 세상에서 그들 나름대로 터득한 생존 전략이다.
옛날과는 달리 지금 젊은이들이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엄청난 삶의 무게 탓에 윗 세대의 도움 없이는 젊은이들이 뜻을 펼치기 어려울 만큼 사회가 점차 엄격한 계급 사회가 되고 있다. 먼 옛날 신라의 골품제는 성골(聖骨)을 최 상층으로 하여 모든 귀족들의 서열을 매겨 놓아 철저한 계급 사회를 만들었다. 신라의 골품제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쳐 조금씩 형태와 명칭이 달라졌지만 그 바탕은 계속되어왔다.
하지만 조선 왕조가 일제에 의해 단절되고 이후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 사라진 줄 알았던 신라 골품제의 망령이 지금 다시 부활해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차이가 줄어들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그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모든 것을 다 차지하려는 우리 사회의 성골 들은 돈과 권력, 그리고 질긴 인연을 총동원하여 일반 서민들과는 떨어진 철벽의 요새를 높이 쌓아가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성골들과 서민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다른 세상에서 살아간다. 태어날 때 한 번 정해진 그들의 사회적 계층은 개개인이 노력한다고 해서 살아있는 동안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오늘의 고달픈 현실이 아니라 더욱 어두운 미래이다. 굳어지고 경직되는 우리 사회의 앞에는 더욱 어두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지만 역동성과 생명력을 잃어버린 사회는 정체된다.
처음에 남미의 칠레에서 무상교육을 요구하는 학생 시위가 벌어질 때만 해도 선진국에서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 개발 도상국 에서나 볼 수 있었던 대규모 학생 시위와 점거 농성이 미국 뉴욕의 한 복판이자 신자유주의의 심장인 월 스트리트에서도 벌어졌다. 점차 견고해지는 계층 사회에 분노한 젊은이들은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과격한 구호를 내세워 뉴욕 뿐 만이 아니라 LA에서 시카고 등 미국 전역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의 분노와 좌절은 곧 국경을 넘어 유럽 각 국에까지 번졌고 일본과 대만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은 물론 마침내 우리나라에도 상륙했었다.
실은 우리나라에서는 이와는 별도로 이미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있었다. 서울은 물론이고 월 스트리트에서 전개되는 청년들의 시위와 경찰의 강제 진압, 대규모 체포와 연행은 마치 분노의 1960년대를 방불케 한다. 서울이든 뉴욕이든 산티아고이든 공부를 더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학생들을 공권력이 체포하고 구금 하는 것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으며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더욱이 신분상 불평등 문제는 지금 미국에서 “흑인들의 생명도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이 모든 문제는 우익이든 좌익이든 이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지나치게 기득권에 집착한 탓이다.역동적이고 진취적인 21세기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이 절망 대신 희망을 가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문제의 정확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 시리즈는 우리 사회의 계층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