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다부동 전투에서 졌다면..

2020년 7월 광화문 광장의 백선엽 장군 추모행렬

역사에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1950년 8월의 다부동 전투에서 국군이 패했다면 우리는 어쩌면 지금 김정은 치하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흔히 스탈린 그라드 전투가 제2차 세계 대전의 분수령이었다고 말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다부동 전투는 한국 전쟁의 분수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때 전쟁이 터지고 두 달 만에 국군은 부산 교두보를 중심으로 한 방어선으로 몰렸다. 물밀 듯이 내려오는 북한군은 이제 대구의 코앞까지 왔다. 만약 대구조차 포기하고 부산으로 가면 이제 초라한 한국 정부에게 남은 선택은 일본에 세울 망명 정부나 제주도 임시정부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모로 보나 다부동 전투에서 한국군이 이길 가능성은 작았다. 북한군은 완전 무장하고 사기가 충천한 5개 사단이었는데 한국군은 불과 1개 사단, 그것도 며칠씩 굶고 잠을 자지 못한 병사들이 대부분이었다. 무기도 병력도 사기도 북한군의 압도적 우세였다.

전투가 벌어진 다부동은 대구에 이르는 관문으로 고지에 둘러쌓인 곳이다. 다급한 유엔군은 애타는 마음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썼던 “융단 폭격”까지 실시했으나 실제 효과는 별로 없었다. 대구 근처까지 진출한 북한군은 대구 시내에 포격을 개시하여 대구시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혼란한 대구를 향해 북한군은 막강한 전차 부대를 앞세우고 보전 합동 작전을 전개하며 쇄도했다. 이에 유엔군도 전차를 동원해 필사적으로 맞서서 좁은 계곡에서 피아간에 격렬한 전차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전투의 중심은 국군 1사단이었다. 국군 1사단은 이 중요한 전투에서 엄청난 사상자를 내면서도 압도적인 전력의 적과 맞섰다.

결과적으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소련군이 기적의 승리를 거둔 것처럼 다부동 전투에서 국군은 승리했다. 개전 이래 변변히 싸워보지 못하고 후퇴하여 미군들로부터 전투력을 의심 받던 국군은 이 전투에서 북한군 정예부대를 격파하여 미군을 깜짝 놀라게 했으며, 승전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국민들의 마음에 커다란 기쁨과 희망을 주었다.

만약 다부동 전투에서 국군이 패배하여 대구-부산 축선의 마지막 방어선이 삽시간에 무너졌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이 다부동에서 기적의 승리를 한 중심에 백선엽 장군이 있다.

당시 국군 1사단장이던 백 장군은 미군들까지 감탄시킨 놀라운 리더쉽으로 이 어려운 전투에서 승리했다. 어제 대전 국립 묘지에 안장된 백선엽 장군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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