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는 내일이 없었다- 보니와 클라이드

보니와 클라이드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Bonnie And Clyde)“는 실제로 있었던 무장 강도 커플의 이야기이다. 때는 미국의 대공황 시대, 멀쩡한 사람들도 실직으로 하고 거리로 나앉는 세상에 하물며 가난하고 별 볼일 없이 자란 청년들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이 시기 우연히 만난 보니 파커(Bonnie Elizabeth Parker) 와 클라이드 배로우 (Clyde Chestnut Barrow)는 어차피 둘 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잡초 같은 인생, 한 번 폼 나게 살다 죽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은행이나 작은 상점을 터는 것이다. 1932년부터 1934년까지 2년 동안 두 사람은 중서부의 작은 마을을 돌며 은행, 주유소, 상점 등을 닥치는 대로 털었다. 두 사람은 금융계나 자본주의에 반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강도 짓을 해서 번 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거나 어디에 묻어 놓지도 않았다. 만약 그들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었다면 잡히기 전에 멕시코로 도주하거나 아니면 신분 세탁을 해서 잠적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들은 무슨 철저한 전략이나 장기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강도 짓을 하고, 방해가 되는 사람들은 모두 쏘아 죽였다. 두 사람은 강도 짓을 하면서 경찰관과 농부들을 포함하여 모두 12명을 살해했다.

이때는 대공황기라 먹고 살기가 어려우니 보니와 클라이드 말고도 이런 식으로 강도 짓을 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보니와 클라이드 커플은 보니가 젊은 여자였기 때문에 신문들의 관심을 특히 받았다. 기사 거리가 될 만한 선정적인 기사에 목 말라 있던 신문들은 “보니는 시가를 피우며 기관총을 마구 쏘아 대는 차가운 미녀이다” 라는 식으로 황당한 기사들을 썼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은 전국적으로 꽤 유명해졌다.

이 같은 관심 덕분에 미연방수사국 (FBI)는 이 두 사람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두 사람의 뒤를 쫓았다. 엄청난 노력 끝에 연방수사관 들은 두 사람의 동선을 파악했다. 1934년 5월 23일 아침, 6명의 수사관과 경찰은 루지애나 주의 한적한 숲 길에 잠복해 있었다. 마침내 두 사람이 탄 차가 다가왔다. 수사관들이 미리 주차해 놓은 트럭 때문에 목표물의 속도가 느려지자 6명의 무차별 총격이 시작되었다.

사살될 때 보니와 클라이드가 탔던 자동차

보니의 비명이 들려왔지만 수사관들은 총격을 멈추지 않았고 뒤에 세어보니 모두 130 발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두 사람의 차는 벌집이 되었고 물론 두 사람은 즉사했다. 두 사람이 죽자 사람들이 몰려와 차 안의 것이든 두 사람의 소지품 같이 돈이 될 만한 것을 모두 집어 갔다. 심지어 혼란 속에 누군가는 두 사람의 머리카락과 손가락을 잘라가기도 했다.

아무리 악명 높은 강도들이었지만 보니클라이드가 전혀 저항하거나 도주하려 하지 않았는데도 수사관들이 일체의 체포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두 사람을 사살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두 사람은 법정에서 재판 과정을 통해 자기들의 입장을 주장할 법적인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미디어와 FBI는 보니클라이드 문제를 마치 서커스처럼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두 사람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조차 행사하지 못하고 참혹하게 사살되어 버렸다.

두 사람이 사살된 지 벌써 90 여 년이 지났다. 하지만 1967년의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원제 Bonnie And Clyde)“는 보니클라이드를 다시 한번 잊혀진 역사로부터 끄집어내었다. 지금도 총알 구멍 투성이인 그들의 자동차는 미국 전역을 돌며 전시되고 있다. 그들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하루 하루를 살았다는 점에서 한국어 제목이 원 제목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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