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길을 열심히 간 20세기 최초 여성 수반

Sirimavo Bandaranaike, Prime Minister of Ceylon, 1960, UPI

여성의 권리 면에서 본다면 아시아나 아프리카보다 서유럽이나 미국이 훨씬 앞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면에서 본다면 꼭 그런 것 만도 아니다. 미국에서는 아직 여자 부통령조차 나오지 못했다. 20세기에 들어와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국가 원수의 자리에 오른 여자는 뜻밖에도 스리랑카에서 나왔다.

물론 세계의 역사를 보면 그 전에도 선덕여왕이나 빅토리아 여왕 같은 여성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모두 혈통으로 인해 왕위에 오른 사람들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여성의 권리가 어느 정도 보장된 서구 선진국이나 혹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형식적이라도 없앤 공산권에서 최초로 여성 지도자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뜻밖에도 지독히도 보수적이고 가난한 나라인 스리랑카에서 선거를 통해 최초로 여성 국가원수가 나온 것이다. 반다라나이케는 수상이던 남편이 암살 당하자 선거에 나가 승리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스리랑카의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Sirima Ratwatte Dias Bandaranaike) 는 단 한번 당선된 것이 아니라 온갖 악조건을 무릅쓰고 1960년부터 2000년까지 세 번이나 수상을 역임했다. 사실 그녀가 다스리는 동안 스리랑카의 경제가 서서히 망가지고 사회적으로도 온갖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냉전 시대에 반다라나이케는 공산 진영을 선택했는 데 그 선택으로 인해 경제가 침체되고 외국 투자 자금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는 수상에서 쫓겨난 후에는 권력 남용 혐의로 고초를 겪었지만 그 후 두 번이나 수상 자리에 다시 복귀하여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것은 어쩌면 인도라는 커다란 나라 옆에서 강대국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 작은 나라, 자원도 없고 기술도 없고 오직 인구만 많은 가난한 스리랑카의 숙명같은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리랑카 국민들은 사회주의 정당이 조금이나마 국민들에게 돈을 뿌리기 때문에 당장의 이익을 위해 사회주의 정권에게 계속 표를 주었다. 한국과 대만이 매년 국민소득을 성큼 성큼 늘려나가던 1970년 – 80년대의 20년 동안 스리랑카는 그저 제자리에 맴돌았다.

재임 기간 동안 비동맹 회의를 리드하여 선진국의 눈엣가시였던 반다라나이케는 2000년 8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반다라나이케가 사라진 후에도 스리랑카는 사회주의의 덫에서 헤메고 있으며 여전히 지독히 가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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