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법이 만든 대통령? 케네디 스토리

조셉 케네디 Joseph Kennedy, Jr.

자유분방하고 합리적인 나라로 알려진 미국은 의외로 가끔 엉뚱한 짓을 하는데 그 중 하나가 1920년에는 헌법을 개정해서까지 “금주법 (Prohibition Laws)”을 제정한 일이다. 이 법은 간단히 말해서 누구든지 술을 만들지도 팔지도 말라는 것이다. 이런 도덕적인 법을 만들 때는 물론 좋은 의도로 하지만 사실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런 법들의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여러 번 왕명으로 금주법이 시행되었지만 그 효과는 별로 없었다. 어쨌든 미국에서 금주법은 1933년까지 무려 13년간이나 시행되어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영향중 세 가지를 들자면, 그 중 하나는 금주법이 “종교적 목적의 음주”는 허용했기 때문에 개신교 나라인 미국에서 갑자기 가톨릭 신자가 늘었다는 것이다. 가톨릭의 영세 의식은 포도주를 나누어 마시는 절차가 있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이 포도주를 마시기 위해 일부러 성당의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두 번째, 금주법은 흑인, 아일랜드계 및 이탈리아 계 이민자등 그 당시 미국사회의 밑바닥을 형성하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부자들이야 술을 몰래 마실 수 있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술을 마시다 걸리면 형사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몰래 만들어 파는 이른바 밀주는 품질이 천차만별이라 가난한 사람들은 싸구려 밀주를 마시고 죽거나 병이 드는 사건이 많았다.

알 카포네 Al capone

세 번째, 일부 대담한 사람들은 이 기회로 큰돈을 벌었다. 알 카포네 (Al Capone)와 같은 마피아들은 조직적으로 밀주를 제조하고 판매해서 그들의 조직을 전국구로 만들었다. 아일랜드 임자의 아들로 가난했던 조셉 케네디도 밀주를 대규모로 제조하여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는 의혹이 있다. 그는 그렇게 번 돈을 써서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주영 미국 대사를 지냈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조셉 케네디는 몸이 약한 자기의 둘 째 아들을 미국 최초의 가톨릭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가 바로 35대 미국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 (John F. Kennedy)이다. 조셉 케네디가 아들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엄청난 선거 자금을 쏟아 부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1960년 선거에서 케네디 캠프는 미국 전역의 라디오 와 TV 광고 시간을 사서 매일 상대방인 닉슨 (Nixon)을 비난했다. 선거 자금이 부족했던 닉슨은 초반의 우세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선거에서 아깝게 패했다.

여하튼 그 결과 1960년의 미국 대선은 미국 대선 역사상 가장 부정 선거와 금권 선거 의혹을 받고 있는 선거가 되었다. 이 엄청난 돈은 모두 조셉 케네디가 벌어 들인 돈에 바탕을 두고 있다. 조셉 케네디가 시골에서 조그만 술집을 하던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어떻게 그런 큰 돈을 벌었는 지는 명확하지 않다. 물론 그도 부동산이나 주식을 했지만 그 것 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래서 조셉 케네디가 대규모로 밀주 사업을 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에도 케네디 가문은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였던 로버트 케네디와 상원의원 에드워드 케네디를 배출하며 승승장구를 거듭했고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명망 있는 정치 가문 중 하나가 되었다. 악명 높았던 감자 기근을 못 이겨 고국 아일랜드를 무작정 떠난 케네디 가문은 할아버지가 미국에서 술집을 시작한 이후 겨우 3 대 째 만에 미국 최고의 명문 가문으로 우뚝 섰다.

그들은 어쨌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것이다. 금주법 시대와 같은 격변기가 오면 대부분의 삶들은 고통을 참으며 견디지만 몇 몇의 재빠른 사람들은 팔자를 고친다는 진리는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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