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소녀 프랑수아즈 사강 (Françoise Sagan)이 “슬픔이여 안녕 (Bonjour Tristesse)”을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지도 벌써 60년이 넘었다. 우리 말로 “안녕”은 영어로 “Hello”와 “Bye”의 두 가지 뜻이 있어서 처음에는 이 제목이 “슬픔이여 잘 가라”라는 뜻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여기서 “안녕 (Bonjour)”은 어서 오라는 뜻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세실은 겨우 17살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17살이 감당하기엔 현실은 너무 거칠고 험하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세실은 담담하게 이렇게 말한다. “어서오라 슬픔이여”
돌아보면 1954년의 프랑스 못지 않게 지금의 세상도 터무니없이 사악하고 혼란스럽다. 어쩌면 사회는 그때보다 더 나빠졌는지도 모른다. 지금 한국 사회의 혼란은 마치 1960년대 프랑스 학생 봉기 시절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나는 17세의 사강이나 세실보다 더 마음 수련이 부족한듯하다. 아직도 나는 담담하게 현실의 슬픔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누군가가 프랑스 좌파 운동의 이론적 바이블이라고 말했던 책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의 서문에서 저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이렇게 말한다. “진보주의자들 역시 내 편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그들의 낙관주의야 말로 내가 문제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서문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렇다. 세상은 잘 되어가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도 결코 잘 되어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