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가면 국립 프라도 미술관이 있다. 프랑스의 루브르나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비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유럽의 대가들의 작품이 너무 많아서 하루 종일 그림보는 재미에 흠뻑 빠질 수 있다. 여기에는 수없이 많은 여러 거장들의 작품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루벤스의 “성가족” 은 재미있는 그림이다. 스페인은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카톨릭의 강한 영향아래 있어 왔기 때문에 성서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 많고 또 그런 그림들은 매우 경건하고 엄숙하다. 대부분의 서구 종교화가 그렇듯이 스페인의 명화들은 대체로 여호와의 권위와 예수의 수난과 영광을 주제로 하고 있다.
루벤스의 본명은 Peter Paul Rubens 로 벨기에 사람이지만 바로크시대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어 이탈리아와 스페인 지역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카톨릭이 드센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활동을 하자니 자연 종교화를 많이 그렸는 데 그 중에 하나가 “성가족과 성안나”(La Sagrada Familia con Santa Ana) 이다. 이 그림을 잘 보면 그림의 앞면에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보인다. 두 사람은 사랑이 담뿍 담긴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 뒤에는 성 안나가 역시 아기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성안나는 누구인가? 성안나는 바로 성모 마리아의 친정 엄마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아이가 없어서 고민하다가 겨우 얻은 따님 덕택에 지금은 주부와 산모들의 수호 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여기 까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그림 “성모자와 성안나” 와 비슷한 구도이다. 그런데 다빈치의 그림과 루벤스의 그림이 다른 점은 오른쪽에 성모나리아의 남편 요셉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성가족의 그림에서 가장인 요셉이 나타나는 일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이 그림은 요셉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성 요셉이 힘들게 나타났다고 해서 대우를 잘 받는 것은 아니다. 중앙에서 밝은 빛을 받고 있는 엄마와 아들과는 달리 가장인 요셉은 오른쪽 구석에 어둡게 그려져 있다. 더욱이 사랑이 듬뿍 담긴 전체 분위기를 확 깨는 듯, 요셉은 전혀 사랑스러운 얼굴을 짓고 있지 않다. 마치 아기 예수를 구경하듯이 쳐다보는 그의 표정에는 의심과 고민이 묻어난다. 왼손은 턱을 만지면서 오른손으로는 한쪽 팔짱을 끼고 있다. 두 손을 발려 딸과 외손주를 감싸고 있는 성안나와는 달리 요셉은 별로 이 즐거운 가족 모임에 동참하고 있는 것같지 않다.

그러고 보니 요셉은 그럴 만 할 것 같다. 우선 예수는 비록 자기가 키우지만 실제로 자기 아이는 아니다. 결혼하자마자 예수가 태어났기 때문에 요셉은 동네의 점잖은 분들로부터 속도위반을 했다는 억울한 혐의를 받고 꾸지람도 듣고 또 동네 아주머니들로부터는 농담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카톨릭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는 “평생 동정”이었다니 요셉과 마리아와의 부부관계도 평생 정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성서에는 요셉에 대해 잘 나와 있지 않지만 요셉은 따로 자식도 없고 단 하나의 자식은 예수인데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는 12살 때 벌써 자기 아버지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아 그 때 요셉은 좀 쓸쓸했을 것이다.
뭐 따지고 보면 요셉이 목수로서 일을 해서 온 가족을 먹여 살렸겠지만 성서에서는 요셉이 어떻게 살았는지도 또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다. 예수는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수태되었기 때문에 요셉이 노총각이 아니었다면 예수가 아기일 때는 요셉이 아직 청년이었을 것이지만 루벤스의 그림에는 젊은 요셉이 아니라 고민과 근심에 가득찬 중년의 남자의 모습으로 나온다.
누가 복음 제 2장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 두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
루벤스의 그림은 이렇게 인간 요셉의 고민과 갈등을 그린다는 점에서 엄숙하기만 한 다른 성화보다는 훨씬 인간적이다. 중세에는 카톨릭이 지나치게 독선적이었다지만 이 그림이 그려진 17세기쯤에는 루벤스와 같은 거장들은 나름대로의 시각을 가지고 성서를 인간적인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종교지도자들은 이 그림을 상당히 거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이 보기에 온 세상이 숭배해도 시원치 않을 예수를 한 가족이라는 요셉이 떫떠름하게 보고 있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당시 지배층과는 코드가 맞지 않고 심지어는 신성모독의 여지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지배층이 자기 그림들을 어떻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루벤스는 자기 소신껏 그린 그림을 남겼기 때문에 오늘날 루벤스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300년전 스페인이나 지금이나 권력에 거스르는 것은 힘든 것이고 권력과 코드를 맞추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화가 권력에 코드를 맞춘 것이 어디 어제 오늘의 이야기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