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김광균 선생의 추일서정을 읽는 가을날

낙엽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도룬 (Torun)은 폴란드의 도시이다. 제이차 세계 대전중 도룬에는 나치 독일의 전쟁포로 수용소가 있었다. 나치는 폴란드 인들을 괴롭혔지만 특히 인근의 유대인들을 모두 없애버렸다. 전쟁 말기에 소련군이 도룬시에 진격하자 이 번에는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독일계 시민들이 모두 소련군에 의해 없앰을 당했다.

전쟁 초기부터 영국에는 폴란드 망명 정부가 있었으나 폴란드를 점령한 소련도, 전쟁 중 폴란드 망명자들을 조직해서 병력으로 실컷 써먹은 영국도 전쟁이 끝나자 폴란드 망명 정부를 모른 체 했다. 폴란드인 들 중 상당 수가 망명 정부를 지지했고 망명정부의 지시에 따라 1944년 여름에는 그 끔찍한 바르샤바 봉기까지 감행했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전쟁이 끝나자, 그동안  폴란드 망명정부가 발행했고 폴란드인들이 사모았던 화폐는 아무 가치가 없게 되었다. 마치 거리에 뒹구는 낙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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