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유치환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窈窕)턴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 간 기술사(奇術師)의 모자(帽子).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寒天)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에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
들어보라.
이 거짓의 거리에서 숨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정치가 국민들의 고통 거리가 될 때, 소심한 시인은 그저 할 말을 땅속에 묻고 봄이 오기만 기다렸다. 모든 사람이 투사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그저 이 고통이 빨리 끝나기만 기도할 따름이다. 정권이 국민들에게 오직 한 목소리를 내기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시인은 비록 “비굴하게” 살더라도 정권의 찬양 따위에 자기의 재능을 쓰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교통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시는 이 혼탁한 세상에 아직도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