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걸 스카우트 연맹의 모토 (motto)는 “준비해라 (Be Prepared)” 이다.아마 걸 스카우트 연맹이 단원들을 잘 훈련시켜 장차 사회에 큰 인물이 되도록 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모토는 꽤 오랫동안 사용되어와서 거의 모든 미국인들이 다 알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데 1969년에 어떤 포스터 업체가 걸 스카우트의 복장과 모토를 이용해 다음과 같은 포스터를 만들었다.
이 사진에서는 걸 스카우트 단원의 제복을 입은 소녀가 임신한 몸으로 웃고 있다. 이 사진이 나온 1969년이면 아직도 미국은 매우 보수적인 사회였다. 그런데 그것도 명예와 규율을 소중히 생각하는 걸 스카우트 연맹의 복장과 구호를 이용하여 이런 무례한 (?) 포스터를 만들어 팔았으니 걸 스카우트 연맹이 단단히 화가 났던 것이다. 그렇다면 걸 스카우트 연맹은 어떤 죄목으로 포스터 회사를 고소할 수 있을까? 명예 훼손? 명예 훼손은 아니다. 미국은 엄연히 헌법에 표현의 자유 (Freedom of Expression) 가 보장된다고 명시된 나라이므로 이런 풍자물을 명예 훼손죄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래서 걸 스카우트 연맹은 연방 상표법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니까 걸스카우트 연맹의 모토인 “준비해라 (Be Prepared)”를 상표권자인 연맹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썼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 결과, 걸 스카우트 연맹이 이기지 못했다. 법원은 상표권 침해의 필수 요건인 소비자의 “혼동 (confusion)“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상표권 침해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문제가 된 포스터에 비록 걸 스카우트 연맹의 모토가 사용되었지만 아무도 그 황당한 포스터가 진짜 걸 스카우트 연맹 것이라고 믿지는 않을 테니 ‘혼동’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본 탓이다.
미국에서는 비록 상업적인 포스터에 사용했더라도 어쨌든 표현이니까, 그러한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법원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 시켜 준 판결이었다. 하지만 만약 지금 다시 이 재판을 한다면 판결이 그때와는 다를지도 모른다. 상표권 침해의 요건이 바뀌어 지금은 “혼동” 뿐만이 아니라 상표의 가치가 “희석 (dilution)“되어도 상표권 침해가 일어난다고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