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저 히스 스토리- 그는 소비에트 스파이였나, 아니면 미친 시대의 희생자였나?

앨저 히스 (1950)
앨저 히스 (1950)

앨저 (Alger Hiss)는 “매카시즘에 희생된 억울한 천재”라고 그 동안 알려져 왔다. 그는 1996년에 죽을 때까지 반공주의라는 시대의 광풍때문에 망가진 자기 인생의 억울함을 개탄했고 진보 언론에서 그는 매카시즘에 맞서 싸운 시대의 양심으로 보여졌다. 앨저 히스는 하버드 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나서 유명 법무 법인에 취직한 수재였다. 1934년 그는 그의 하버드 법과 대학 은사이며 후일 미국 대법원의 대법관이 되는 프랑크 퍼터 (Frankfurter)의 권유로 잘 나가는 변호사 생활을 그만두고 미국 국무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제2차 대전 기간 동안 국무부에서 그는 계속 출세하여 마침내 제2차 대전의 마무리를 지은 얄타 회담에서 미국측 대표단의 주요 인물로 참여하였고 국제연합 (UN)을 출범시킨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의의 의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이후 카네기 국제 평화재단 이사장을 맡는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지만 그의 화려한 일생은 1948년에 갑자기 커다란 전기를 맞게 되었다.

냉전이 격화되던 1948년이 되자 미국내 소련 스파이 조직이 검거되었는데 그 핵심 인물의 입에서 히스가 사실은 소련을 위해 일해온 스파이였다는 증언이 나온 것이다. 물론 히스는 펄쩍 뛰면서 부인했지만 당시는 매카시즘의 광풍 아래 공산주의자 색출 바람이 불었던 때라 그는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이미 시효가 지나서 비록 반역죄로 기소되지는 않았지만 두 건의 위증죄로 각각 5년의 실형을 받았다. 그의 빛나는 커리어는 이렇게 폭력적으로 끝났다. 그는 3년 동안 복역하고 풀려났다.

그 후 그는 거의 40년을 조용히 살다가 92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죽기 전까지 끝까지 자기는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는 억울했을까? 그는 누명을 쓴 것일까? 그가 정말 소련의 스파이였다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영국의 킴 필비처럼 나름의 신념이 있었던 것일까? 소련이 무너지고 KGB의 자료가 많이 공개되었지만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서로 다른 증거들 속에 아직 진실은 알 수 없고 오직 그의 유죄를 결정한 판결만이 남아있다.

(참고) 앨저 히스 인터뷰 영상 (1970)  https://www.youtube.com/watch?v=WXY2NDv5C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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