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렘브란트의 그늘에서 살다 간 불행한 여자가 있다

렘브란트의
헨드리케가 모델이었던 렘브란트의 "목욕하는 여인"

 

네델란드의 렘브란트 하르멘스존 반 레인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은 17세기에 혜성처럼 나타나 서양 초상화의 역사를 바꾼 대가이다. 그는 재능있는 화가였으며 또한 자존심이 센 천재였다. 당시에 화가들은 주로 부유층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초상화를 그렸기 때문에 그림 솜씨 뿐만이 아니라 사교성도 좋아야 했는데 렘브란트는 별로 사교성은 없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그는 주문받은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내키는 대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가끔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그는 아내와는 매우 금슬이 좋았고 아이를 넷이나 낳았다. 하지만 그의 아이 셋은 모두 죽었고 아내도 몇 번의 유산으로 허약해져서 어린 아들 하나를 남겨놓고 그만 세상을 떠났다.

사랑했던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렘브란트는 깊은 슬픔에 잠겼지만 그 슬픔도 잠시, 그는 자기를 따르던 어느 미망인과 깊은 관계에 빠졌다. 물론 여자 측은 결혼을 원했지만 렘브란트는 그렇게 쉽게 재혼을 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렘브란트가 전처를 사랑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사실은 돈 문제 때문이기도 했다. 렘브란트는 전처로부터 상당한 재산을 유산으로 받았지만 만약  렘브란트가 재혼하면 전처의 유언장에 따라 그 재산을 도로 내놓아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결혼을 기다리다 지친 미망인은 화가 난 나머지 렘브란트를 계약 위반으로 고소했다. 이유는 요즘 말로 하면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위헌 판결을 받은 혼인 빙자 간음죄일 것이다. 렘브란트는 재판에 져서 그 미망인에게 많은 돈을 배상해야 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해 렘브란트는 미망인을 정신병자로 몰아 정신병원에 수용시켜 나름대로 복수(?)를 했다.

안주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 홀아비 화가가 홀로 사는 집안에서도 누군가가 어린 아들을 돌보아주고 살림을 맡아주어야만 했다. 그 때 헨드리케라는 젊은 하녀가 들어왔다. 미망인과 골치 아픈 문제를 일단락 지은 렘브란트는 당분간 조심하는 듯했으나 결국 20살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헨드리케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 들은 딸까지 낳았지만 역시 전처의 유언장 문제 때문에 정식 결혼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좁은 암스텔담에서 두 사람의 수상한 관계는 금세 문제가 되었다. 보수적인 그 당시 사회에서는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같이 동거하는 것은 매매춘 행위라고 보았다. 이 때문에 헨드리케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아 법적으로는 “매춘부”취급을 받게 되었다. 이 판결로 그녀는 평생 교회에서 영성체를 할 수 없게 되었는데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그 당시에 영성체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사회적 매장과 다름이 없었다고 한다.

헨드리케가 이렇게 많은 고통을 받았는데도 동거만 할 뿐 정식으로 결혼은 해 주지 않는 렘브란트에 대해서 그녀는 틀림없이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낭비벽이 심했던 렘브란트는 결국 개인 파산을 신청하여 재산을 대부분 잃게 되었으므로 도저히 재혼을 하여 전처의 유산까지 포기할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그 대신 렘브란트는 사랑하는 헨드리케를 그린 작품들을 많이 남겼는데 렘브란트의 대표적 명작으로 꼽히는 “목욕하는 여인”도 사실은 헨드리케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 법으로 보면 헨드리케는 공식적으로 법적 배우자가 아니었으므로 만약 렘브란트가 헨드리케를 버리더라도 헨드리케는 위자료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렘브란트와 헨드리케처럼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오랫동안 부부처럼 동거하는 관계를 사실혼 관계라고 한다. 당시 서양에서는 이런 관계를 부도덕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법적으로 결혼 관계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역사적으로 보면 렘브란트처럼 유명한 창작자들이 거장을 따르는 젊은 여성과 사실혼 관계를 가진 경우가 많았는데 남자가 그 관계를 끝낼 때면 대개 여자들이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버림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스트우드와 산드라 락
이스트우드와 산드라 락

할리우드 영화에서 항상 정의의 사나이로 나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1980년에 어느 여배우와 동거 관계를 정리하면서 법적 분쟁에 휩싸였다. 그 여배우 ( Ms. Sondra Locke)는 14년 동안이나 이스트우드를 믿고 그를 뒷바라지하며 사실상 부부로 살아왔는데 나이가 들자 이제 와서 아무런 보상도 없이 집에서 내쫓기는 것은 억울하다며 이스트우드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하였기 때문이다. 이스트우드는 그 동안의 관계가 정식 결혼 관계가 아니고 사회적으로 부도덕한 동거인 줄 알면서도 서로 좋아서 같이 산 것이므로 여자 쪽이 위자료를 청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맞섰지만 이미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이스트우드는 결국 막대한 금액을 주고 상대방과 합의할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197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사실혼 관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또 법의 입장도 많이 바뀌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비록 정식 결혼을 한 사이가 아니더라도 어느 한 사람의 잘못에 의해 사실혼 관계가 정리되면 다른 배우자가 잘못을 한 배우자로부터 위자료를 받을 수 있다.

다행히 렘브란트는 헨드리케를 만난 후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고 헨드리케 또한 결혼식 올릴 날 만을 기다리며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암스텔담에 전염병이 퍼지자 그동안 정식 결혼을 기다리며 살던 헨드리케는 그토록 바라던 면사포를 한 번 써보지도 못한 채 그만 병에 걸려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더욱이 그들의 관계는 정식 결혼 관계가 아니었으므로 헨드리케는 렘브란트의 가족 묘지 대신 공동 묘지에 홀로 묻혀 곧 잊혀졌다. 오늘날 우리는 렘브란트의 그림에서만 그녀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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