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선진국은 공업 중심 산업이고 개도국은 농업 중심 산업이었다. 개도국은 바나나나 커피, 고무나 원목 같은 것을 선진국에 팔았다. 이것이 이른바 리카르도 (Ricardo)의 비교 우위 (比較優位)이론에 근거한 분업 체제이다. 개도국의 제조업이란 것은 싼 노동력을 이용해 신발이나 티셔츠 같은 것을 만들어 선진국에 파는 것을 뜻했다.
아무 것도 없는 개도국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 언젠 가는 일본이나 한국, 그리고 중국처럼 돈과 기술을 모아 선진국 대열에 올라갈 수 있다는 꿈이 있었다. 이런 꿈을 안고 태국, 베트남, 말레이지아 같은 나라들이 그 길에 뛰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점차 그런 꿈은 그저 꿈일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이제는 선진국이 공업, 제조업 뿐만이 아니라 농업에서도 비교 우위가 있는 세상이 오고 있다.
인공지능 (AI)과 첨단 기술을 갖춘 선진국들은 뉴욕 도심 한 가운데의 고층 빌딩에서 무인 공장 시설을 통해 신발과 티셔츠를 만들 수 있다. 파업도 없고 노조도 없다. 노동 착취 비난도 받지 않고 현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줄 필요도 없다. 인건비와 운송비가 별로 들지 않으니 해외 공장보다 원가도 적게 든다.
서부의 샌프란시스코는 땅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곳인데 이곳에 서 AI를 통한 농업을 하는 회사들도 있다. 플랜티 (PLENTY)와 같은 회사들은 농구장 크기의 부지에 고층 농장을 운영한다. 흙은 전혀 필요 없는 수경 재배이며 켜켜이 쌓인 층마다 온갖 작물이 재배된다. 벌레도 없고 농약도 치지 않는다. 환경 오염 문제로 비난 받지도 않고 불법 체류 외국인들을 고용할 필요도 없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논밭에서 재배하는 것보다 원가 면에서 훨씬 적게 든다.
게다가 개도국에 주로 매장되어 오랫동안 개도국의 무기였던 천연 자원도 이제는 무기가 되기 어려워진다. 석유의 수요를 어느 정도 대체할 전기 자동차와 셰일 가스의 개발은 앞으로 국제 사회에서 산유국들의 힘을 크게 약화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공업도, 농업도, 자원도 그 어느 것 하나에서도 비교 우위가 없어지는 개도국들에게 남는 선택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