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정말 따뜻한 임금이었을까? 노비 종모법과 그 의미

세종대왕영정

조선의 세종대왕은 어떤 임금이었을까? 모든 사람은 빛과 어둠의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다. 세종은 좋은 왕이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휴일이나 주말이란 개념이 없었으므로 조선의 노비들은 쉬는 날이 따로 없이 죽을 때까지 일을 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 취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 불쌍한 노비들에게도 인정을 베푼 조선의 왕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성군으로 유명한 세종이다.

실제로 ​세종은 세종 12년인 1430년에 승정원에 내린 교지를 통해 여자 노비들이 출산 중 사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종전에 7일간 주던 출산휴가를 100일로 늘렸고, 출산 1개월 전부터는 산모의 노동 의무를 면제해 주도록 했다. 게다가 1434년에는 그 남편에게도 한 달 간의 산후 휴가를 주도록 명령을 내렸다. 인권이 발달한 서구의 산전 휴가도 20세기에나 도입된 것을 보면 세종의 산전 산후 휴가 제도는 정말 시대를 앞서간 것이다.

하지만 세종이 사실은 조선의 노비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에 따르면 세종 시대에 노비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그것은 세종이 `노비 종모법(奴婢從母法)`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노비 종모법`은 양인인 남자와 노비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노비로 보는 제도이다.

노비는 세금을 내지 않으므로 노비의 숫자가 늘고 양인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나라를 위해 좋을 것이 없다. 그래서 세종의 아버지 태종 때만 해도 양인과 노비의 결혼을 금지해 노비 인구 팽창을 막았고 양인인 남성과 노비인 여성 사이에 자식이 생기면 그 자식을 양인으로 인정했다 그런데 세종은 이런 정책을 뒤집어 그 자식을 노비로 삼게 했다. 노비 종모법에 따르면 여자 노비의 주인은 노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기의 자식들을 노비로 거래하는 황당한 짓도 했을 것이다.

흑인들을 아프리카에서 잡아와 노예로 부리던 미국에서도 이런 잔인한 법은 드물었다. 게다가 노비가 주인을 고발하는 것을 법적으로 막는 “노비 고소 금지법(奴婢告訴禁止法)“도 세종 때 실시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노비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이 없어졌다. 

세종이 죽고 나자 그나마 형식적으로 행해지던 산전 산후 휴가는 없어지고, 이후 400여 년 동안 조선의 노비들은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세종은 분명 뛰어난 왕이었고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조선 왕들 중에 가장 훌륭했다는 세종조차 노비들에게 이런 대우를 했으니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도대체 세종은 어떤 마음으로 이런 일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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