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사라호 태풍이 왔다

2019년 9월에 미국은 초대형 허리케인 도리안(Dorian)으로 초비상 상태였다. 플로리다 주민들에게는 지난 2005년 8월 미국 남동부를 초토화 시킨 허리케인 카트리나 (Hurricane Katrina)의 악몽이 생생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끔찍한 태풍이 가끔 찾아오는데 그 중에서도 1959년의 14호 태풍 사라호는 오랫동안 우리나라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사라호 태풍은 1959년 9월에 한반도에 영향을 끼쳤다. 사라호가 몰고 온 폭우와 강풍은 한창 추석으로 들떠있는 한반도 전역을 덮쳐 이재민이 무려 37만 명에 사망 또는 실종자가 849명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바다에서는 수많은 어선들이 부서지고 육지에서는 엄청난 숫자의 집들이 무너졌다. 오갈 데 없는 수재민들은 천막을 치고 거리에서 노숙을 해야 했다. 그 때는 너무나 가난했던 1959년이었다. 그나마 민족의 명절이라는 추석 날에 즐거운 명절 기분은 커녕, 하루아침에 집과 재산을 잃고 거리에서 노숙을 하던 사람들의 절망감은 지금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태풍이 지나가도 가난했던 나라는 피해자들을 별로 도와줄 수 없었다. 그러자 민간 분야에서 전국의 각급 학교와 회사에서  “수재 의연금”을 반 강제로 모아 이 국가적 재난의 피해를 줄이려 애썼다. 

여기에서 사라호라는 것은 태풍의 이름이 “Sarah”라는 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태풍에는 여자 이름을 붙였는데 특히 미국의 여성 이름들을 붙인 것은 특이하다. 조금이라도 천재지변의 강도가 부드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성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만 해도 태풍을 추적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뿐이었으므로 미국 기상청에서 작명을 했기 때문에 미국인의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한 편, 가진 것이 없는 나라에서 사라호 태풍 피해는 너무나 큰 타격이었다. 정부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오갈 데 없는 수재민들이 잠시 국민학교 교실에서 기거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정도였다. 국민들이 옷가지나 금품을 모았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수재민들은 그저 고통을 견뎌야 했다. 생각해 보면 참 힘든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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