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역사에는 메리라는 이름의 여왕들이 여럿 나온다. 그중에서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Mary, Queen of Scots)은 좀 불쌍한 사람처럼 보인다. 지금 스코틀랜드는 영국의 한 부분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오랫동안 독립 국가였다.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합병된 것은 1707년이니까 이제 300 년 정도 되었다.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가 다스리던 때는 1542년부터 1567년까지 이다. 이 때 공교롭게도 스코틀랜드의 남쪽 잉글랜드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메리는 엄마가 프랑스의 공주였기 때문에 살 때 프랑스로 보내져 그 곳에서 컸다. 아마 그 곳에서 살 때가 메리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메리는 외가의 알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특히 메리는 어학에 뛰어난 소질을 가졌는지 라틴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그리스어, 프랑스어와 같은 외국어에 능통했다고 한다. 메리는 금발에 키가 크고 미인이었다는데, 프랑스 왕실 교육 답게 메리는 시와 음악에 대한 교육도 받아 예술에 남다른 지식이 있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권을 가진 공주인데다가 미인이지, 다방면에 뛰어난 학식이 있지, 메리는 아마 그 당시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받았을 것이다.
한 편 메리는 잉글랜드에도 사신을 보내 자기가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권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자기를 후계자로 낙점해달라고 요구했다. 메리는 헨리 7세의 증손녀였기 때문에 법적으로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메리의 권리를 인정하였지만 후계자로 공포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메리를 질투했을 것이다.
그래도 메리와 엘리자베스는 서로 사촌이었고 그 덕분인지 그동안 죽어라고 싸우던 스코틀랜드와 영국은 이 때 싸우지 않고 잘 지냈다. 그러나 문제는 스코틀랜드 내부였다. 스코틀랜드에는 이미 종교개혁의 열풍이 몰아쳐 나라가 가톨릭과 개신교로 나뉘어 내전 상태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메리는 양 측을 중재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메리는 프랑스에서 오래 살다 스무 살이 되어서야 스코틀랜드에 돌아왔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의 사정에 밝지 못했다. 그녀가 프랑스에 있는 동안 존 낙스로 대표되는 개신교는 이미 스코틀랜드의 중심 종교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메리는 영어보다도 프랑스어를 더 잘했다. 또 독실한 가톨릭이어서, 스코틀랜드 개신교도의 중심 인물인 존 낙스는 그녀를 “다른 종교를 가진 외국 여자” 정도로 생각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