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군이 거둔 놀라운 군사적 승리와 정치적 실패 이야기

주코프원수
주코프원수

해방 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들은 밤이면 떼를 지어 여자들을 찾아 다녔다… 손목 시계를 보면 무조건 헐 값에 팔라고 하거나 빼앗아 어린 소련군 병사들이 팔목에 주렁주렁 시계를 두르고 다녔다…” 

소련군 병사들이 점령지에서 성폭행을 상습적으로 저질렀다는 것은 이미 유럽으로 진격한 소련군의 만행에 대한 넘쳐 나는 기록으로 입증되었으므로, 이러한 주장은 단순한 조작이라기 보다는 충분히 사실일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인민의 군대라는 소련군이 전범 국가인 독일에서라면 몰라도 북한에서 왜 그렇게 기강이 무너진 채 민중의 분노와 공포를 일으켰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로스께”들은 “무식하고 거칠다”는 이미지를 이 땅에 심어주었다. 일부에서는 러일 전쟁 때 한반도에서 만났던 제정 러시아 군인들과 비교하여 “공산주의”가 러시아 사람들을 망쳤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거친 소련군은 그 때 아시아 최강이라고 자부하던 일본 관동군을 격파한 무적의 군대였다. 극동 주재 소련군은  이차 대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유명한 주코프 (Zhukov, Гео́ргий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Жу́ков) 장군의 주도아래 이미 할힌골 전투 (battle of Khalkhin Gol)에서 일본이 자랑하던 악명높은 관동군을 박살낸 적이 있다. 

특히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하자, 소련군은 150만 병력을 신속하게 동쪽으로 이동시켜 극동의 150만 일본군 (만주국등 포함)을 공격했다. 그러자 국부군은 물론 공산군까지 모든 중국군에 대해 연전 연승하던 막강한 관동군조차 소련군과 개전하자마자 불과 3 주간의 전투로 완전히 붕괴되어 일본군은 만주 전역에서 패주를 거듭하게 되었다. 소련군의 진격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심지어 일왕의 항복 선언이 있기 전에 이미 소련군 선발대가 한반도 북부에 들어왔다. 

하지만 소련은 소련군 하급 장교 출신의 김일성을 밀어 그를 북한의 지도자로 만들었고 오늘날의 북한 체제를 만들었었다. 한반도에 진주한 소련군은 전쟁은 잘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잘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결과 지금 북한은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에 목을 메고 있으며 한반도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어쩌면 소련군의 잘못된 정책이 오늘날까지 여러 가지로 그 후유증을 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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