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에 고재봉이 어린아이를 포함한 일가족 6명을 도끼로 살해했을 때 그는 겨우 25세였다. 그는 군복무 중 부대장의 당번병으로 근무하였는데 부대장의 관사에서 쇠고기를 훔치다가 걸리자, 오히려 흉기로 협박하다가 군법에 의해 7개월동안 실형을 살았다. 출소한 그는 원수를 갚겠다며 부대장 관사에 들어가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그러나 고재봉은 자기가 군 형무소에 있는 동안 부대장이 바뀌어 엉뚱한 가족을 죽인 것을 범행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는 다시 이전 부대장을 찾아 죽이겠다고 서울로 잠입하였다. 그동안 그의 범죄가 드러나서 이미 그에게는 3만원이라는 엄청난 현상금이 걸렸고 결국 그는 청계천에서 행상을 하던 한 청년의 신고로 체포되었다.
그는 군형법에 의해 1964년 총살형에 처해졌는데 죽기 직전에는 기독교에 귀의하여 참회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한 때 어린아이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 부모들은 “고재봉이 온다!“고 겁을 주기도 했고 그의 이름은 길에서 부르는 아이들의 노래 속에 등장하기도 했다.
한 밤중 영문도 모르고 억울하게 희생된 고 이중령 부부는 한국 전쟁때 장교와 여선생으로 만나 지역의 공산군 부대를 섬멸하는 데 큰 공을 세웠던 유명했던 분들이었다. 그 들의 이야기가 영화로 이미 만들어졌을 정도로 용감하고 좋은 분들이었으나 너무나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분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