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민주화 시위의 결말, 그 슬픈 엔딩의 예감

홍콩 민주화 시위의 결말
홍콩 민주화 시위의 결말

지금 진행되는 홍콩 민주화 시위의 결말 은 어떻게 될까?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외국 영화가 주로 미국 영화 아니면 홍콩 영화였다. 특히 홍콩 영화는 아직 주윤발이 나오기 이전이므로 왕우, 로례, 깡따위 등이 나오는 무협 영화 아니면 리칭 등이 나오는 청춘물이었다. 특히 리칭의 “스잔나”를 보고 그 슬픈 스토리는 둘째 치고 홍콩의 발전한 모습에 한국 관객들이 놀랐던 생각이 난다. 지금은 그런 표현을 쓰지 않지만 그 때는 학생들 사이에서 “황홀하다” “멋지다”의 뜻으로 “홍콩간다”는 저급한 표현이 쓰였다. 그러고 보면 홍콩은 너무나 발전한 곳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등소평


그러다 홍콩은 1997년 7월 1일에 중국에 반환 되었다. 영원할 것 같던 영국의 깃발이 내려지고 중국의 국기가 올라가던 그 때 내가 느낀 것을 뭐라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 때 중국공산당의 지도자 등소평 (鄧小平)은 홍콩이 독립된 상태로 앞으로 50년간 유지될 것이라고 굳게 약속했지만 그 것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20여년이 지난 지금 홍콩에는 공산주의의 무서운 칼날이 턱밑에 있다. (참고: 빈과일보의 종간, 그리고 시일야방성대곡 )


만약 중국이 지금 군사력으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홍콩 시위를 진압한다면, 그래서 사실상 홍콩의 독립성이 소멸되고 수많은 희생자들이 나오게 된다면, 1997년에 무책임하게 홍콩을 버리고 떠난 영국과 그 것을 수수 방관한 서방 국가들이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북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이 파리평화협정을 체결 한 후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남베트남을 침공한 것을, 중공이 국공합작을 어떻게 악용했는지를, 북한이 휴전협정을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는 지를. 홍콩 민주화 시위의 결말 도 역시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약속이란 그저 불리할 때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이를 잘 알면서도 홍콩을 중국에 넘겨 줄 수 밖에 없었던 서방측의 무력함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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