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 왕건과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닮았다?

아우구스투스
아우구스투스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죽은 것은 기원후 14년 8월 19일이다. 예수가 기원후 1년에 태어나 33세에 세상을 떠났다고하니  그는 예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것 같다. 로마 황제로서 최고의 권력과 부귀를 누린 그의 마지막 말은  “내가 연극의 내 배역을 잘 했었나? 그렇다면 내가 퇴장할 때 박수를 쳐다오. (Have I played the part well? Then applaud as I exit)” 라고 하는데 이는 속설에 근거한 말이고 공식적으로는 ” 보라, 나는 흙으로만든 로마를 물려받아 대리석으로 남겨두고 간다 (Behold, I found Rome of clay, and leave her to you of marble)”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가 수많은 정치적 라이벌들을 차례로 몰락시키고 시저도 하지 못했던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을 보면 그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가족이나 친척들을 살육하였고 적들에게는 도무지 자비라는 것을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지만 황제가 된 이후에는 훨씬 자비심이 많아졌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는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악티움 해전에서 무찌른 후에도 사망하기 5년전까지 외부의 적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계속하였다. 그는 친자식이 없어서 세번 째 황후가 이전 혼인 때 낳았던 아이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로 부터 시작된 그의 혈통이 티베리우스, 갈리큘라, 크라우디우스를 거쳐 마침내 네로 황제때 끊어질 때까지, 로마 황실은 온갖 범죄와 음모, 광기가 넘치는 곳처럼 기록되고 있다. 


고려 황제 왕건의 인생도 아우구스투스와 비슷하다.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한 후 불과 6년도 안되어 세상을 떠났다. 왕건은 송악 (개성)의 부유한 상인 가문에서 태어나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결국 41세에 쿠데타를 일으켜 궁예왕을 축출하고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 이후 안으로는 반란이 계속되고 밖으로는 후백제와 전쟁을 계속하여 매우 고단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마침내 그의 나이 60쯤 되던 해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그러니 그의 인생에서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생의 마지막 6년 뿐이었으리라.

왕건은 후삼국 통일의 대망을 이루고 얼마 안되 병에 걸렸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주위에서 슬피 울고있는 사람들에게 빙그레 웃으면서 “원래 인생이란 다 그런거야” 라고 오히려 위로해주었다고 한다. 왕건이 죽고 난 후 고려 황실은 혜종-정종-광종 으로 이어지는  동안 수많은 반역과 암살, 학살과 쿠테타가 계속되었다. 결국 창업자의 길은 험난한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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