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을 저버린 평화 구걸 행각의 종말

뮌헨 회담에서 돌아와 히틀러와 맺은 평화협정을 들고 기뻐하는 체임벌레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unichAgreement.jpg)
뮌헨 회담에서 돌아와 히틀러와 맺은 평화협정을 들고 기뻐하는 체임벌레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unichAgreement.jpg)
“평화냐 전쟁이냐” 이렇게 물으면 모두가 평화를 선택할 것이다.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항상 인기가 있다.  1938년 9월 29일 영국 수상 체임벌린은 독일 뮌헨으로 가서 히틀러와 회담한 끝에 히틀러가 그토록 집요하게 원하던 체코의 수데텐 지역을 히틀러에게 넘겨버리는 뮌헨 협정을 맺었다. 
체임벌린은 체코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의 나라 땅인 수데텐 지역을 통째로 독일에 넘기는 대신 독일이 더 이상 어떠한 영토적 요구도 하지 않는 다는 히틀러의 공식 약속을 받았다. 뮌헨 협정에서 당사국인 체코는 초대되지도 않았고 히틀러는 커다란 외교적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체코에 대한 명백한 배신 행위였지만 당장 눈앞의 전쟁을 막기에 급급했던 영국 정부는 체코를 버렸다.
  
그러나 체임벌린 수상은 비록 우방국 체코를 희생시키기는 했지만 참혹한 전쟁을 피하고 유럽에 평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하고 의기양양하게 영국으로 돌아왔다. 영국으로서는 다시 전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체임벌린은 공항에 도착하자 모여있는 지지자들에게 협정서를 휘두르며 외쳤다.
“친애하는 여러분, 우리 역사상 두번째로 영국의 수상이 독일에서 명예로운 평화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제 이 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임을 믿습니다. (My good friends, for the second time in our history, a British Prime Minister has returned from Germany bringing peace with honour. I believe it is peace for our time.)”
그러나 1939년 9월 1일, 평화를 걸고 수데텐 지역을 쉽게 손에 넣은지 불과 1년도 채 못되어 나치는 뮌헨 협정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폴란드를 침공하였고 이어 네델란드, 덴마크 와 프랑스로 물밀듯이 진격하기 시작했다. 나치에게는 국제적인 협정이나 상식, 그리고 신사 협정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체임벌린이 히틀러에게 속아 유화정책에 매달려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영국은 제대로 전쟁 준비를 하지도 못한 채 방심하고 있다가 갑자기 독일과의 전쟁에 내몰렸기 때문에 그의 유화 정책은 실패한 정책의 전형으로 두고두고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체임벌린은 수상을 그만둔 지 불과 6개월 후 쏟아지는 세간의 비난 속에 암으로 쓸쓸히 죽었고 그의 뒤를 이은 처칠은 결국 고난을 무릅쓰고 제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어내 세기의 영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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