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자동차 이야기 – 가난했던 사회의 꿈이었던 자가용

옛날의 주유소
옛날의 주유소

지금이야 자동차가 마치 자전거처럼 누구나 집집마다 하나씩 있는 것이지만 옛날에는 자가용이 매우 귀했다. 박정희 정부가 새마을 운동을 부르짖던 70년대에는 “자가용 타고서 친정에 가세”라는 것이 홍보 영화 “쥐띠 부인” 주제가의 가사에 있었다. 다시 말해, 크게 성공해서 친정에 자가용을 타고 가려면 근검 절약하고 소득 증대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자가용은 너무나 귀한 재산이었으므로 소중히 다루었다. 차고가 없는 집은 비싼 자가용에 비를 맞힐 수가 없어서, 자동차에 차 커버를 씌워 관리했다. 

영화 "쥐띠부인' (1972)
영화 “쥐띠부인’ (1972)

그 때는 주유를 하러 차를 몰고 주유소에 가면 “셀프”는 생각도 못했고, 당연히 직원들이 뛰어 나와 주유를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차를 닦아 주었다. 자가용이 있는 집은 대개 운전 기사가 있었다. 인건비가 아주 쌌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서울의 중상층 가정에는 가정부와 운전 기사가 있었던 시절이다. 

하지만 1980년대가 되자 운전 기사없이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경제 발전으로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싼 임금으로 운전 기사를 둘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에서는 새로 등장한 이런 사람들을  “오너 드라이버” 라고 불렀는데, 이는 아마 “owner driver”라는 콩글리쉬였을 것이다. (사실 영어에서 “owner driver”는 대개 물류 운송 사업을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영어를 쓰지 말고 국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해서 이를 “손수 운전자”라고 바꾸어 불렀다. 이 때, 이미 미국에서는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운전기사 없이 직접 운전하던 시기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나라에는 운전 기사가 운전하는 차가 거리에 많다. 아마 아직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어쩌면 임금 부담 보다 체면이나 전통 탓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외국에서 사람들을 많이 데려오지 않는 이상, 머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도 운전 기사가 있는 가정은 희귀한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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