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유럽인들은 잘 살지만 과거에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19세기 후반 유럽 시골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의 1885년 작 “감자 먹는 사람들 (The Potato Eaters)“입니다. 그림을 보면 한 농부 가족이 저녁 식사를 위해 식탁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림이 전체적으로 어두운 것은 아직 전기가 없던 옛날의 유럽 시골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정말 가난한 집으로 보입니다. 천장에는 호롱불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그림에는 남자 한 사람과 여자 네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남편과 아내 그리고 시어머니와 두 딸 들인 듯합니다. 하지만 “전원일기”와 같은 농촌 드라마에서 보듯이 온 가족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저녁 식사 장면이 아닙니다. 여기 사람들은 웃지도 않고 무엇인가에 화가 난 것처럼 모두 딱딱한 표정입니다.
화면의 중앙에는 네모난 식탁이 보입니다. 식탁 위에는 덜어 먹을 개인 접시도 없이 큰 접시 하나가 있습니다. 그림의 왼쪽부터 볼까요? 맨 왼쪽에는 모자를 쓴 마른 남자, 그러니까 남편이 무표정하게 오른쪽을 바라보면서 오른손에 든 포크로 식탁 위에 놓인 감자를 집고 있습니다. 거칠고 뼈가 앙상한 그의 손을 보면 그가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그 옆에는 흰색 모자를 쓴 젊은 여자가 역시 포크로 감자를 집고 있네요. 이 여자는 아마 큰 딸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자는 긴장된 얼굴로 자기 옆의 아빠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마치 “나 이거 먹어도 돼?”하고 묻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네요. 너무 많이 먹었다가는 아빠에게 혼나는 모양입니다. 요새 같으면 한창 멋 내기에 바쁠 나이겠지만 그녀의 옷은 남루하고 그녀의 손은 아빠처럼 거칠고 형편없습니다. 아들이 없는 터라 큰 딸은 아빠와 같이 농사일을 열심히 하는 모양입니다.
세 번째 여자는 돌아서 있어서 뒷모습만 보입니다. 그녀는 아마 둘째 딸인 것 같은데 감자 접시를 보고 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은 할머니 같습니다. 오른손으로 흰색의 조그만 종지 같은 것을 들고 오른쪽의 며느리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며느리에게 커피를 달라고 하는 듯합니다.
맨 오른쪽의 여자가 며느리인데 고생이 찌든 얼굴입니다. 그녀는 왼쪽의 시어머니의 눈길을 무시하고 조그만 주전자를 기울여 식탁 위에 놓인 커피 잔 네 개에 커피를 따르고 있습니다. 감자와 커피 이 두 가지가 이 집의 저녁인 듯합니다.
가난한 농가의 저녁 식사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과일도 없고 야채도 없습니다. 이때는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지금과는 달리 식사에서 영양의 균형을 맞춘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때였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광대뼈와 굵은 주름이 도드라져 보이네요. 한눈에 보아도 영양 상태가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농부 가족들은 왜 하필 감자를 먹고 있었던 것일까요? 감자는 원래 남미에만 있던 작물인데 16세기에 스페인이 중남미를 식민지로 하면서 유럽에 전해졌습니다. 감자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특히 농사가 흉작이라 다른 작물이 잘되지 않을 때에도 비교적 꾸준히 생산된다고 합니다. 그 이후 감자는 유럽을 구하는 중요한 작물이 되어 많은 사람을 굶주림에서 구했습니다. 별로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이라 그저 값싸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감자가 농민들의 주식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반 고흐는 원래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되려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광산촌에 가서 전도사로서 일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그만두고 화가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이 그림은 고흐가 귀족이나 부자들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아름답게 그리거나 멋있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흐는 구태여 어떤 설명을 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사실을 보이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농촌을 그래도 좀 멋있게 그렸던 프랑스 화가 밀레의 작품들과는 다릅니다. 이 그림 속에서 저녁 자리에 모여 앉은 가족들은 모두 힘들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들은 화가 나있습니다. 이처럼 실제 농촌 생활은 그다지 목가적이지도 않고 낭만적이지도 않습니다.
하루하루 고된 노동에 찌든 사람들은 분노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작품은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 하층 계급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보이는 작품입니다. 정말 먹을 것이 귀한 가난한 가정의 저녁 식사 모습을 보면서 지난날 가난했던 우리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