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발렌타인날의 학살로 보는 공수처의 미래

성발렌타인 날 학살 현장사진
성발렌타인 날 학살 현장사진

한국에서 알 카포네로 알려진 알 카폰 (Alphonse Gabriel Capone)은 금주법 시대에 활약했던 미국 시카고 지역의 갱 두목이었다. 전성기에 그는 꽤 힘이 있었는데, 시카고의 경찰은 물론 세무서, 시청 그 누구도 그의 뜻을 거스릴 수 없었다. 

그의 조직은 금주법 시대에 몰래  술을 팔아 큰 돈을 벌었다. 그는 밀주 말고도 매춘과 도박 사업에도 수완을 발휘하여 번 많은 돈으로 지역의 유력 인사들을 매수했다. 그 자신의 잔인한 폭력과 더불어 권력층의 비호를 배경으로 그는 점차 경쟁 갱조직을 분쇄하고 중서부에서 독점적인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그가 저지른 많은 사건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1929년 2월 14일의 이른바 “성 발렌타인날의 학살”이 가장 유명하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한다는 성 발렌타인 데이였다. 경쟁 갱조직 7명이 시카고의 어느 창고에 모여있었는데, 갑자기 경찰들이 나타났다. 늘 있는 검문인 줄 알고 갱들은 순순히 시키는 대로 벽에 일렬로 섰다. 하지만 그 들은 경찰이 아니었다. 알 카포네가 보낸 암살단 4명은 줄지어 서있는 라이벌 조직원들에게 총을 난사해서 모두 죽였다.

백주 대낮에 그 것도 대도시 한 복판에서 무려 7명이 총에 난사당해 죽었다 시카고 신문들은 이 사건을 대서 특필하고 “성 발렌타인날의 학살”이라고 이름붙였다. 경찰과 FBI (미연방수사국)은 이 끔찍하고 대담한 범행에 대해 반드시 범인을 색출해서 정의의 심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범인들은 “전혀”잡히지 않았다. 알 카폰에게 매수된 수사 기관은 하는 척만 했지 실제로는 적극적인 수사를 하지 않았다. 알 카폰의 조직이 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알 카폰은 나중에 다른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그의 죄목에 살인죄는 없었다. 이 사건의 범인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1929년의 성 발렌타인날의 학살 사건은 당시 미국에서 수사 권력이 얼마나 썩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다. 그 때는 권력이 봐주기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권력층에 관련된 수사나 재판은 그저 “공공 서커스 (public circus)”라는 조롱을 받던 시절이다. 

한 편 우리나라는 아직도 검찰이나 법원이 정권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20여 년동안 매 번 큰 비판을 받을 때마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이번에야 말로 개혁을 하겠다” 고 약속했다. 하지만 뼈를 아무리 깎아도 늘 제자리였기 때문에 국민들은 검찰을 믿지 못하고 공수처 설치를 찬성하였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 것이다.  그러면 공수처는 제대로 할까? 살아 있는 권력에 의해 설치되었고 오직 여권의 권력에만 책임을 지는 공수처는 아마 검찰보다 더 큰 문제를 낳을 것이다. 성 발렌타인날의 학살로부터 벌써 100 여 년, 우리는 아직도 알 카폰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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