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오브 테러: 오스트리아의 전쟁 범죄

영화
"The Sound of Music'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The Sound of Music)”의 주연 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 (Christopher Plummer)씨가 2월 5일 세상을 떠났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이 영화에서 대다수의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히틀러의 나치당에 저항하는 좋은 사람들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 것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오스트리아는 1938년 안슐루스 (Anschluss: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합병)를 할 때 국민투표를 했는데, 총투표자중 무려 99.75 %가 안슐루스에 찬성했다. 이미 독일군이 국경을 넘었으므로, 투표가 공포와 강제 속에서 실시되었다고는 하나, 진군하는 독일군이 곳곳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독일군을 환영하는 오스트리아군중
독일군을 환영하는 오스트리아군중

오스트리아 어디에서도 조직적인 저항은 없었으며, 오스트리아 정부는 간단히 독일에게 나라를 넘겨주었다. 사실 독일 총통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출신이었고, 그가 독일의 총통이라는 것에 오스트리아인들은 커다란 자부심을 가졌던 듯하다.

이후 오스트리아는 독일 편에서 열심히 싸웠으며 그들은 점령지 곳곳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다. 오스트리아인들은 나치군의 일원으로 유럽 전체에서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동부 유럽인들은 독일 나치보다 오스트리아 나치들이 더 무서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세가 역전되어 연합군이 국경 근처에 오자, 오스트리아는 얼른 입장을 바꾸어 마치 오스트리아가 독일의 총칼에 의해 강제로 합병된 듯 연기를 했다. 그 결과 전쟁 중 나치의 선봉에 섰던 오스트리아는 독일과는 달리 분단되지 않고 그대로 남을 수 있었다. 심지어 한국도 해방 후에 억울하게 분단된 것에 비하면 오스트리아가 전쟁후에 분단이 되지 않은 것은 정말 기적이었다.

오스트리아가 가해자가 아니라 희생자라는 이 터무니없는 오해는 어떻게 보면, 미국과 영국의 양해와 오스트리아인들의 잔꾀가 만든 합작품이다. 전후 1965년에 만들어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도 이런 잘못된 인식을 굳히는 역할을 했다. 그러고 보면 역사의 심판이란 때론 꽤 불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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