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의 3.1 운동에 대해 북한은 이를 “3.1. 인민 봉기”라고 부른다. 이처럼 북한은 3.1 운동을 일제의 통치에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대규모 항쟁을 한 것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북한은 3.1 운동을 이끌었던 33인에 대해서 매우 난처한 모양이다. 북한은 33인을 대체로 “외세에 기댄 투항 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하지만, 사실 그 33인이 바로 3.1. 운동의 구심점이라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북한의 비난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은 왜 33인을 비난할까? 그 가장 큰 이유는 이 들 중에 공산주의자가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해방 이전에 있었던 대일 투쟁 사건들 중에 가장 큰 사건이 3.1 운동이었지만, 여기에 공산주의자들은 한 명도 없다. 하기는 공산주의자들만 빠진 것이 아니다. 당시 조선에서 가장 힘이 있던 단체인 유학자 집단도 없고, 가톨릭도 없다. 여러 변명이 있지만, 이들이 3.1 독립 선언서에 모두 누락된 것은 어쩌면 천추에 씻지 못할 부끄러움일 것이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북한은 3.1운동이 사실은 김일성의 아비되는 자가 주동한 것이라고 터무니없이 역사를 날조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북한의 혼란스러운 역사 해석 방식은 상당히 흥미롭다. 북한 정권은 한글의 우수성을 강조하지만 그 한글이 봉건 군주인 세종이 만들었다는 것은 모른 척한다. 고려 청자와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을 격찬하지만 당시 귀족들이 그 도자기들이 만들어 지도록 했다는 점은 무시한다. 강감찬 장군이나 이순신 장군이 외적을 물리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그 장군들이 말하자면 봉건 “부르주아”였다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북한이 내세우는 스탈린식 역사 인식에 따르면 우리 역사는 “한 줌도 안되는 착취 계급”이 오랫동안 “전 인민을 착취”해온 부끄러운 역사일 것이다. 하지만 이른바 “민족주의적 공산주의”라는 해괴한 북한식 공산주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들이 보는 역사는 이른바 “착취 계급”의 성과는 모두 가져오되, 그 계층을 증오하는 기묘한 접근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북한이 정말 이조 (북한에서는 조선 왕조를 “이조”라고 낮추어 부른다)의 지배 계급을 증오한다면, 우리는 북한이 한글 대신 소련식 키릴 문자를 쓰기를 권한다. “계급의 적”이고 “철천지 원수”인 조선의 왕이 만든 한글을 자랑스러워하면서, 동시에 조선 왕조를 증오하는 것은 우습지 않은가? 북한은 어쩌면 한글도 세종이 만든 것이 아니라 “무산 계급”의 인민들이 만들었다고 주장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려면 세종시기에 한글을 만든 상상의 인물이라도 꾸며대야 할 텐데 그런 주장을 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겠다. 설마 김일성의 10대조 쯤 되는 자가 한글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