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앤드류 쿠오모, 야수성이 드러나다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 (c)2014 DIANA ROBINSON

미국 뉴욕주의 주지사 앤드류 쿠오모 (Andrew Cuomo)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1983년부터 1995년 동안 뉴욕 주지사를 지낸 마리오 쿠오모 (Mario Cuomo)이다. 잡화점을 경영하던 부모를 둔 마리오 쿠오모는 자수성가해서 미국 동부 정치계의 거물이 되었다. 그가 오랫동안 뉴욕주의 수장 노릇을 하는 동안 점차 “쿠오모 패거리 (Cuomo clan)”가 만들어졌다.  

그는 나중에는 전국적인 인물이 되었는데, 비록 되지는 못했지만 1988년과 1992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유력했다. 특히 1992년 대선에서 그는 주변의 강력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상당 기간 출마를 망설였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애매한 태도는 많은 지지자들에게 실망을 주어 “쿠오모처럼 망설이는 (as hesitant as Cuomo)”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마리오 쿠오모는 평생 진보 (liberal)의 가치를 주창하였지만, 그의 집안은 억만장자가 되었다. 정치만 평생한 사람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다. 어쨌든 그가 일궈온 돈과 명성을 배경으로 그의 장남 앤드류는 정치인의 길을 쉽게 걸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쿠오모 패밀리는 영화 “대부 (Godfather)”를 떠올린다. 마치 마이클이 아버지의 덕으로 마피아 조직의 두목이 되었 듯이 앤드류는 아버지의 후광을 입어 뉴욕주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마이클 콜리오네에 비해 앤드류는 훨씬 기량이 떨어지는 듯하다. 다른 리버럴들과 같이 앤드류도 증세를 통해 세금을 더 걷고 하층 계급에게 퍼주는 팽창적 재정 정책을 펴왔다. 게다가 다른 많은 리버럴들 처럼, 그는 여성과 동성애자들의 권리 보호에 앞장섰다. 모든 리버럴들처럼 그는 실적보다는 홍보에 더 신경을 쓴다. 하지만 실적이 없는 홍보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 결과 2019년쯤이 되자 그의 인기는 바닥을 치고, 앤드류가 정치적으로  회복하지는 못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2020년 부터  밀어닥친 코로나 19 위기는 그를 구했다. 2020년 부터 그의 인기는 J자 반등을 하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지만, 그 행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시 2021년이 되자, 앤드류 쿠오모는 잇단 성추행 스캔들로 고전하고 있다. 그동안 보수파 정치인들의 도덕성을 앞장서 비난하던 그가 사실은 성적인 야수 (sexual predator)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진보 매체들은 앤드류의 야만적 행태에 대해 그저 입을 다물고 있다.  좌파들의 행태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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