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프랑스의 민중 화가 밀레 (Jean-François Millet) 의 “만종 (The Angelus)” 을 보시면, 이 그림은 55cm x 65 cm 정도의 크기이고 지금은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Musée d’Orsay)에 있습니다. “만종”이란 저녁에 울리는 종소리를 말합니다. 이 그림은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꽤 유명한 그림입니다. 이 그림이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것은 아마도 일본에서 시작된 그림의 인기가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도 퍼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시다시피 이 그림은 들판에서 저녁 기도를 올리는 농사꾼 부부를 그린 것입니다. 그림의 윗부분 그러니까 위에서 1/3 정도 지점에 화면을 가로질러 지평선이 보입니다. 지평선의 윗부분은 해가 뉘엿뉘엿 져버린 하늘입니다. 아직 남아있는 햇살 탓인지, 하늘의 구름이 여러 가지 색깔로 얼룩 덜룩하게 보입니다. 들판은 잘 정리된 논이나 밭이 아니라, 그야말로 황무지처럼 제대로 경작되지 않은 거친 밭처럼 보입니다. 지평선 저 멀리 교회의 종탑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그림의 가운데에는 두 사람이 서있습니다. 해가 이미 졌기 때문에 두 사람의 모습은 어둡게 보입니다. 자세히 보면 왼쪽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모자를 벗어 두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아 들고 있습니다. 그는 파란색 바지에 누런색 윗 옷을 입고 있군요. 그의 누런 신발은 마치 오늘날의 등산화처럼 투박해 보입니다. 그의 왼쪽에는 끝이 세 개로 갈라진 쇠스랑이 땅에 꽂혀 있습니다. 아마 그가 막 땅에 꽂았나 봅니다.
남자 옆, 그러니까 그림의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에는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역시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가슴에 대고 있습니다. 그녀는 키가 크고 젊어 보입니다. 그녀는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는데, 풍성한 윗옷은 작업복 같아 보입니다. 그녀는 또 발목까지 오는 치마를 입고 있고 역시 길게 늘여 뜨려진 흰색 앞치마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지금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저녁 종이 울리자 이 두 사람은 하던 일을 황급히 멈추고 모자를 벗어 저녁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때 프랑스 사람들은 저녁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사람들이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신에게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지금도 어떤 이슬람 국가에서는 하루에 몇 번 씩 기도 시간을 알리는 방송이 울려 퍼진다고 하지요? 사실 이러한 장면은 우리에게도 익숙합니다.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는 오후에 국기 하강식을 하면 거리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거리의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서서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미술 전문가들은 이 그림이 가난하지만 소박하고 경건한 시골 생활을 그렸다고 칭찬합니다. 그런데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í)는 이 그림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였습니다. 그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섬찟한 느낌이 든다면서, 이 그림이 경건한 기도를 하는 농민들을 그린 것이 아니라 죽은 아이를 내려 보는 부부의 모습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바구니가 놓인 자리에는 원래 죽은 아이의 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감자가 수확 될 때까지는 먹을 것이 없는 기간인데, 그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달리는 이 그림이 굶어 죽은 아이의 관을 내려다보며 슬퍼하는 가난한 부부의 모습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 그림은 평화롭고 경건한 것이 아니라 슬프고 괴로운 느낌을 줍니다. 괴짜로 유명했던 달리의 이 같은 주장은, 오랫동안 엉터리 주장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사람들의 수군거림 탓에 오르세 미술관은 마침내 그림을 X 선으로 투시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구니가 있는 자리에 원래는 네모난 모습이 그려졌던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로써 이 그림에 대한 달리의 다소 황당한 해석이 사실일 수 있다는 주장이 퍼졌습니다. 정말 그 네모난 모습은 아기의 관이었을까요? 이 그림은 굶어 죽은 아기를 담은 관을 내려보면서 아기와 슬픈 작별을 하는 가난한 부부의 모습을 그린 것일까요? 아니면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하루를 마치는 감사의 기도를 들이는 부부의 모습을 그린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 밀레가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를 믿고 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