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의 데자뷰인가? 높아지는 국제적 위기감

히틀러에 열광하는 독일국민
히틀러에 열광하는 독일국민

번영의 1920년대가 갑자기 끝나고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삽시간에 전 세계에 커다란 경제적 충격을 주었다. 그러자 유럽에서도 여기 저기에서 보호 무역주의와 외국인 배척을 주장하는 정당들이 갑자기 지지를 받게 되었다.

혼란스러웠던 이탈리아에서는 학교 선생 출신의 무솔리니가 파시스트당을 만들어 수도 로마로 진군하는 모험을 벌인 끝에 정권을 잡았다. 대공황으로 경제가 무너진 독일에서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히틀러가 주도하는 나치당이 뮌헨 폭동을 벌인 이후, 갑자기 정권을 손에 쥐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스페인에서도 군사 반란이 일어나 인민전선 정권을 무너뜨리고 파시스트 정권을 세웠다. 이들 정권들은  모두 강한 국수주의적 경향을 띠고, 국내 산업의 부흥을 부르짖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에서도 야당이던 민주당은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내세워 대선에서 승리했다. 새로 집권한 루즈벨트씨는 엄청난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돈을 풀었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루즈벨트의 정책은 어쩌면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실책으로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히틀러, 무솔리니와 루즈벨트는 공통점이 있다. 그 들은 모두 국내 경제의 부흥을 내세웠지만, 사실 전쟁이 없었다면 그들의 경제 부흥 정책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참다 못한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인근 국가를 침공하는 전형적인 제국주의적 전쟁을 일으켰고 이는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확전되었다.

어제 (한국시간 3월 17일) 미국의 아틀랜타에서는 한국계 교민인 여성 네 명이 총격으로 사망했다. 불과 21살의 백인 청년이 세 군데나 되는 아시아인 가게들을 순회하면서 총을 난사한 이 사건은 꽤 충격적이다. 우리는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들불처럼 확산되는 반아시아 (사실은 반중국) 정서에 주목한다. 

우리는 지금의 복잡한 현상에서도 한 가지를 알고 있다.  그 것은 경제가 어려워질 수록 사람들은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930년대의 독일에서는 희생양이 유대인이었고, 일본에서는 조선인 (한국인)이었다. 공포와 분노에 쌓인 사람들은 매우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반응한다. 지금 볼 수 있는  반아시아 정서, 아시아인들에 대한 폭력, 높은 관세와 각종 수입제한..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마치 1930년대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각국의 높은 민족적 자존심은 갈등과 전쟁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우려가 있다. 어느 나라든 정부는 자기들의 정책 실패를 인정하기 보다는 차라리 경제 파탄의 원인을 외국에 돌리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나라의 국민들이 어이없는 국뽕에 취해있을 때는 더욱 위험하다. 우리는 애국심에 찬 젊은이들이 집단으로 전쟁터에서 도살되던  지난 전쟁들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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