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과 포용의 상징으로서 보는 디시스 벽화

Deesis mosaic
Deesis mosaic

서기 453년에 오스만 튀르크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증오에 가득 찬 채로 적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을 함락시켰습니다. 그 뒤 그 화려한 도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쟁이 끝나고 500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 터키에서는 많은 기독교 유적을 볼 수 있는데 특히 이스탄불 (옛날 콘스탄티노플)의 유명한 아야 소피아 (하기아 소피아, Hagia Sophia)에 가면 누구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거대하고 멋진 건물은 4세기에 그리스 정교회의 성당으로 지어진 것으로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에 놓이기 전에는 천 년 동안 동로마 제국의 종교적 상징이었을 만큼 그 규모와 내부 디자인이 뛰어납니다.

아야 소피아는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이나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세워지기 수백 년 전에 세워진 성당으로 건축학적 가치가 대단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이후 오스만 튀르크는 이 건물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기독교 시설들을 파괴하거나 해체하지 않고 단지 건물의 내부만을 조금 고친 다음 이슬람교의 사원으로 계속 사용했습니다. 놀랍게도 오스만 튀르크는 아야 소피아의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기독교의 벽화들조차 긁어내거나 벗겨내지 않고 단지 그 그림들이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가리기만 했을 뿐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20세기에 오스만 튀르크의 뒤를 이어 들어선 터키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지난 5백 년 동안이나 이슬람교의 중심 사원으로 사용되어온 이 건물을 국립 박물관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아야소피아가 터키나 이슬람교의 재산이라기보다는 인류 공동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므로 어느 특정 종교의 사원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국립 박물관으로 탈바꿈한 아야 소피아는 단장을 끝내고 그동안 가려져 왔던 찬란했던 비잔틴 벽화들을 외국인들에게도 보여주게 되었지요.

아야소피아에 있는 그 멋진 벽화들 중에서도 예수와 성모 마리아 그리고 세례 요한을 그린 디시스 벽화(The Deësis mosaic)는 가장 유명합니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아들 예수를 쳐다보는 큰 눈동자를 가진 성모 마리아의 쓸쓸한 얼굴은 천 년 전에 유럽 사람들이 생각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터키에 가시면 꼭 보셔야 할 인류 문화의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국가들과 격렬한 전쟁을 치른 오스만 튀르크가 전쟁이 끝난 후에는 적이었던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벽화들을 잘 보존해온 덕분에 오늘날 종교를 떠나서 이런 멋진 벽화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지요. 이처럼 오스만 튀르크와 그 뒤를 잇고 있는 터키가 이슬람교의 나라로서 용서와 관용 정책으로 인류의 다양한 문화유산을 잘 지켜온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About Author

Previous article천박한 도시 서울의 선택은?
Next article보수 우파 서울 시장 후보 단일화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