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살다 보면 세상에 대해 나름 알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은커녕, 좋은 사람조차 별로 없다는 것도 스스로 깨우치게 된다. 세상에 실망하고 사람들에 분노하면서 우리는 점차 나이를 먹는다.
무릇 인간으로 태어나서 위선적이지 않은 사람을 찾기란 마치 풀밭에서 다섯 잎 클로버를 찾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여러분 중 대부분은 아마 네 잎 클로버조차 찾아보지 못했을 것이다)이른바 지식인이라는 부류의 위선에 대해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이야기와 소설, 우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조선왕조를 돌아 보자. 공자왈 맹자왈을 들먹이며 입만 열면 위민이니 경천이니 외치던 양반 선비들은 사실 추악한 이기주의자인 적이 많았고, 그들이 외치던 대의 라든가 공맹의 도라는 것도, 이익 앞에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뭐 따지고 보면 지금의 지식인들도 못지않다. 공부를 할만큼 했다는 고관 대작들의 청문회는 왜 항상 “부동산 투기” “자녀 부정 입학” “탈세”가 빠지지 않는 것일까? 입으로는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을 주장하는 자들이 부정부패에 더 심한 형편이니 그저 한심할 따름이다. 어쩌면 이 나라에서는 사소한 이익이라도 악착같이 챙겨야 성공할 수 있는 모양인지도 모른다.
그러 면에서 진중권 선생은 매우 특이하다. 누구든 그의 사상이나 말투가 마음에 안들 수 있고 그를 인간적으로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지금 시대에 보기 드물게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지식인이라는 점은 아무래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남들은 수억 원 씩 뒷돈을 주고 들어간다는 교수 자리를 지난 번에 진중권 선생이 걷어차고 나올 때, 우리는 그저 그의 용기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진보 진영에서 보기 드문 이론가로 탄탄한 팬덤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가 집권 세력의 부패 문제에 너그러운 자세를 취한다고 해서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그의 유려한 말솜씨는 이미 정평이 나있으니 그가 집권 세력의 부정 행위를 합리화할 수 있는 논리는 아마도 넘쳐흘렀을 것이다. 아니, 지난번 동양대 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때, 그가 그저 입 다물고 가만히 만 있었어도, 진중권 선생은 그 꿀 빤다는 교수 자리를 지키면서 편안히 노후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무릇, 정의감에 불타는 것이 학자의 양심이라고는 하나, 그 것도 다 젊을 때 이야기이지 벌써 나이 50이 넘어서 헛된 정의감에 자기 자리를 거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그런데 60을 바라보는 진중권씨가 갑자기 바보처럼 교수직을 걸고 집권 세력과 맞섰을 때, 우리는 그저 머리를 긁으면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맞기는 하다. 지식인이라면 자기 진영에 숨어 부정을 모른 척하고 편히 사는 것은 옳지 못하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 있고 당장 메꾸어야 할 카드 빚이 매달 돌아오는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다.
여러 가지 이유로 오래 바깥에서 추위에 떨다가 늦게서야 대학이라는 튼튼한 울타리 속에 들어간 진중권 선생은, 다시 들판에 혼자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추운 일인지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옳은 길을 택하여, 그를 진보의 나팔수 정도로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의 편견을 산산히 부수어 놓았다.
그는 결코 보수의 편이 아니다. 보수 쪽에서 볼 때, 그의 논리는 송곳 같고 그의 글은 추상 같다. 하지만 이제 보통 사람들은 그의 독설이 아프지도 불편하지도 않다. 오히려 지금 이 나라에 진중권 선생처럼 진영이 아니라 옳은 쪽에 서는 용기있는 지식인이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 까지 하다. 진중권 선생, 부디 더욱 힘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