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사 학살 100주기를 맞아 간토에서 희생된 한국인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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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of "Le Petit Journal", 7 October, 1906

오는 5월 31일은 “털사 학살(Tulsa massacre)”이 일어난지 꼭 100년 째 되는 날이다. 털사 학살은 지난 1921년 5월 31일에 시작된 끔찍한 흑인 학살을 뜻한다. 

털사 학살은 오늘날에도 미국의 주류 언론들이 애써 피하려고 하는 주제이지만, 수 백 명의 흑인들이 백인 폭도들에 의해, 거리에서 혹은 집에서 살해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미국 남부의 오클라호마주 털사 (Tulsa)시였다. 

이날 19살의 백인 엘리베이터 승무원 세러 페이지를 17살의 흑인 소년 딕 로랜드가 공격했다는 이유로 백인들은 “건방진” 흑인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기로 결의했다. 총으로 무장한 백인 폭도들은 딕 로랜드가 구금되어 있던 구치소를 습격하였고, 이어 도시 곳곳에서 흑인들을 마구 죽이고 흑인들의 집과 상점을 불태우는 엄청난 일이 자행되었다. 물론 백인 경찰들은 이를 방관하였고 마침내 계엄령이 선포되어 주방위군이 배치될 때까지, 시 전역에서 학살과 약탈, 방화가 난무하는 무법 천지가 이틀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이 사태로 사망자들 이외에도 수 천명이 부상당하고 만 명이 넘는 흑인들이 집을 잃었다.

1921년에 일어난 미국의 털사에서 일어난 흑인 학살은 여러 모로 1923년 이른바 간토 대지진 직후 일본에서 벌어진 한국인 학살과 유사하다. 돌아가거나 돌봐 줄 나라가 없던 흑인이나 한국인들은 이렇게 억울하게 학살되어도 어디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다. 수 천 명의 한국인들이 억울하게 살해된 이른바 간토 대학살 이후에도 일본인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고, 살아남은 한국인들은 애써 이 슬픈 기억을 잊도록 강요당했다. 

마찬가지로 털사 학살에서 대낮에 거리에서 지나가는 흑인들을 학살한 백인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오히려 흑인들은 털사의 비극을 잊도록 교육받았고, 이 사건은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져야 했다. 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미국 사회의 아픈 상처를 들쑤시는 말썽장이로 낙인 찍혀 사회적으로 매장되었다. 오랫동안 망각속에 묻혀있던 털사 학살에 대해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사건이 일어난 후 무려 75년이나 지난 1996년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미국 사회에게도 이 사건은 너무나 아픈 기억이었던 모양이다. 

5월 31일을 맞아, 100년 전 억울하게 학살된 털사의 시민들을 생각하면서, 또 간토 대학살에서 희생 당한 우리 한국인들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털사의 흑인들이나 간토의 한국인들이나, 모두 힘없는 마이너리티로 태어난 것이 죄라면 죄였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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