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전쟁의 진흙탕 속에서 고생하던 미국이 드디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자, 매일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지난 20년 동안 미국을 도운 현지인들이다.
미국 정부는 비록 미군이 철수해도 아프간 정부가 이슬람 반군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 정부 이외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프간 사정을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약한 아프간 정부군은 미군이 철수하면 곧 무너질 것이며 탈레반이 다시 아프간 전역을 지배할 것이라고 본다.
미국이 월맹과 파리 평화협정을 맺고 남베트남에서 철수하자, 1975년에 월맹군은 협정을 깨고 물밀듯이 남베트남으로 진격했다. 철수하면서 만약 위기가 오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철석같이 맹세했던 미국은 남베트남 정부의 붕괴를 구경만 했다. 베트남이 적화 통일되자, 그동안 남베트남 정부와 미국에 협조했던 수 많은 사람들은 살해되거나 강제 수용소로 가야 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은 쪽배를 타고 무작정 망망대해로 떠나, 정처없이 남중국해를 떠도는 이른바 “보트 피플 (boat people)” 신세가 되었다.
지금 분명한 사실은 이 것이다. 현재의 탈레반은 그 때의 월맹보다 더 잔인하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은 바다가 없으므로 탈출이 쉽지 않다. 미군이 떠나고 탈레반이 진주하면, 수 많은 사람들의 시체가 아프간의 거리와 들을 채울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지금 필사적으로 미국에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허용된 미국의 입국 비자 (Special Immigrant Visa)의 숫자는 많지 않다.
그대신 미국 정부는 이들에게 미군 철수 이후에도 아프가니스탄이 안전할 것이라고 설득하고 있지만, 사실 그런 설득은 공허하기만 하다. 아프가니스탄은 미군이 주둔한 지금도 지극히 위험한 데, 앞으로 미군이 철수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제 우리는 1975년 베트남 패망의 데자뷰를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