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아버지의 육아 엘레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육아 엘레지 가 집집마다 들려온다. 길어지고 있는 코로나 사태로 여기 저기서 한숨 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이미 은퇴한 노인들에게도 지금은 위기이다. 오늘도 조부모들은 자기들의 아이를 맡기고 직장에 가버린 자녀들을 원망하며, 손주들과 씨름 중이다. (참고: 손주보기의 새 규칙)

바로 얼마 전까지는 나름 느긋한 노년을 보냈다고 생각했다면, 하루 빨리 과거를 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그렇다, 지금은 전쟁이다.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전쟁은 기억의 저 편 끝에서나 남아 있던 30여 년 전의 추억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또 그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보다 몸은 더 아프고 하루 하루가 더 힘들다.

게다가 가만있어도 힘든데,딸이든 며느리든 시도 때도 없이 밖에서 카톡으로 한 마디씩 꼭 한다. “애 숟가락은 소독하고 먹이는 거지요? 아이 옷은 삶으셨겠지요?” 아니, 그렇게  자기 아이가 소중하면 직접 키우지 그래? 이런 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오지만, 뭐 어쩌겠나. 그저 애써 웃으며 삼킬 수 밖에.  

그 뿐이랴? 지 엄마 등쌀에 애 앞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한다. 좀 편하게 말하면 아이에게 사투리 가르친다고 난리, 어쩌다 영어 단어 이야기하면 지 아이 발음 망친다고 난리, 투덜거리기라도 하면 험한 말 배운다고 난리, 이 건 뭐 손주가 아니라 상전이다.

그러다가 모처럼 친구에게 반가운 연락이 왔다. 친구가 묻는다. 매 달 있는 모임에 요새는 왜 안 나오냐고, 모두들 얼굴이라도 좀 보자고 한다. 차마 손주를 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 못하니 답답하다. 지난 번엔 어떤 동네 모임에 손주 데리고 나갔다가, 애가 울어 대는 통에, 망신만 당하고 중간에 그냥 집에 왔다. 이렇게 하루 종일 갇혀서 애만 보니 꼭 어디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것 같다.

퇴직 후 시간을 내서 그동안 예쁘게 꾸며 놓은 내 집도 이미 엉망이다. 혹시 손주에게 안 좋을 까봐, 집안의 작은 장식품은 모두 치웠다. 집안에는 미리 사다 놓은 장난감들과 그림책으로 가득하다. 게다가 우유 냄새와 응가 냄새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다. 이러다가는 냄새가 내 옷에 다 묻어버릴 것 같다.

그러게, 진작 애들이 결혼한다고 할 때, 처음부터 나는 손주는 못 봐준다고 딱 잘라서 말했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니 사돈네가 왜 상견례때 뜬금없이 그런 말을 불쑥했는지 알겠다.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만 가만히 있다가 덤터기를 써 지금 이렇게 고생한다. 그런데 사돈네는 페이스북을 보니 이 시국에도 여기 저기 놀러 다니는 모양이다. 역시 사람은 머리가 좋아야 몸이 편하다 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육아 엘레지 가 문제라더니, 내가 그 꼴이 될 줄은 몰랐다.

오늘도 나는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씻는 것도 대충, 화장실 사용도 대충, 그야 말로 손주 보느라 쩔쩔매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애 들아, 매달 100만 원 주기로 한 거 이번 달엔 진짜 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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