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6일 따가운 햇살이 내려쬐는 여의도 공원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은 택배 종사자들로 파업중 이른바 “상경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대부분 3-40대의 남자들로 그들의 모습은 그동안 얼마나 택배일이 힘든 일이었는지를 분명히 말해주는 듯했다. 그 분들은 그렇게 힘든 일을 꾹 참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해왔을 것이다. 오늘 이렇게 집회에 왔지만 사실 얼마나 이것저것 걱정이 많으랴.
그런데 오후가 되자 택배업계 노사와 정부 등이 참여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합의점을 찾아 이제 민간 택배 종사자들은 파업을 중지한다는 반가운 보도가 나왔다. 이날 오후 택배노조와 민간택배사들은 2022년 1월 1일부터 택배기사들을 분류작업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과로방지책에 대해 합의했다. 다만, 우체국 택배노조는 아직 합의문에 찬성하지 않았다. 어쨌든 제삼자로서는 이제 그 분들이 뙤약볕 아래 시위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이랴 싶었다. 그런데 발표된 그 합의란 것을 보니 좀 이상했다.
합의안에 따라 앞으로는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를 막기 위해 근무시간은 줄이되, 근로자들의 임금 보전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택배기사의 최대 작업시간은 일 12시간, 주 60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하기로 했다. 만약 작업시간이 4주 동안 일주일 평균 64시간을 초과할 경우, 영업점과 택배기사는 물량·구역을 감축한다고 한다.추가 고용에 따른 비용은 평균 170원 정도의 택배비 인상으로 처리한다고 한다.
결국 이론적으로 보면 택배회사는 증원에 따른 추가 비용만큼 택배비를 올려받으니 손해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고생하며 시위에 나온 분들은 이제 초과 근무를 하지 못하니 사실상 급여가 삭감되는 셈이다. 물론 근무시간이 줄어드니 앞으로 과로사나 산재의 위험은 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일을 더해서 돈을 더 벌고 싶어도, 이번 합의에 따라 더 일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이 과연 꼭 좋은 일일까?
지난 14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롯데택배의 대리점 직원인 47살 남성 임 모 씨가 자택에서 뇌출혈 증상이 일어나기 전에 매주 평균 80시간 넘게 일해왔다고 발표했다. 그 주장이 맞다면 이번 합의안에 따라 앞으로 임모씨 같은 분은 주당 60 시간만 일해야 하므로 주당 20시간 만큼의 수입이 줄어든다. 임모씨처럼 일했으면 당연히 급여의 150% 정도의 초과 근무 수당이 붙을 것이다. 그 20시간에 해당하는 급여를 단순히 시간당 15,000원으로 적게 잡더라도 주당 35만 원이고 그러면 한 달이면 140 만원이다. 택배기사들의 한 달 평균 임금을 400 만원으로 생각한다면, 이제 줄어들 금액 140만 원은 평균 월임금의 35%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즉, 단순 계산이기는 하지만 택배기사들은 이번 투쟁의 결과 무려 35%의 임금 삭감을 감수하게 된다.
물론 이번 합의안은 사회적으로는 좋은 소식이다. 택배 회사들이 고용을 늘려야 하므로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노조원 개개인들에게 좋은 소식일까? 그분들이 “비록 내 수입은 많이 줄었지만, 사회적으로 일자리가 늘어났으니 보람있었다” 라고 기뻐할 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하니 궁금해졌다. 도대체 노조는 이번 합의안에 왜 합의한 것일까? 아니 처음에 기획한 이번 상경 투쟁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현재 택배기사들 중 노조에 가입한 인원은 10% 안팎이라는 데, 나머지 90%에 달하는 택배 기사들의 의견은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