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시피식 정의, 40년 밖에 안 늦었다?

미시시피식 정의 (에드가 레이 킬런, 1964)
미시시피식 정의 (에드가 레이 킬런, 1964)

지금부터 16년 전인 2005년 6월 21일, 오랫동안 미루어졌던 정의의 심판이 마침내 내려졌다. 미국 미시시피 법원에서 1964년에 저지른 범죄로 81세의 노인이 기소된 것이다. 좀 늦기는 했지만 미시시피식 정의 (正義)가 결국 실현되었다. 

이날 기소된 사람은 에드가 레이 킬런 (Edgar Ray Killen)으로 그는 1964년 당시 미시시피의 한 지역에서 악명높은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 큐 클랙스 클랜 (KKK)”의 책임자였다.

1964년은 흑인 민권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던 시기였다. 북부의 민권운동가들은 남부의 차별적 행태에 크게 실망하여 남부를 바꾸려고 애를 썼다. 그러한 노력의 하나로 북부의 젊은이 세 명이 남부로 왔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그 지역 백인들을 분노하게 하여, 킬런을 비롯한 KKK 단의 백인들은 이 “건방진 북부놈들을 처리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이들 백인들은 세 명의 젊은이들을 납치하여 미시시피의 시골에서 죽였다. 젊은이들의 끔찍한 최후는 곧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으나, 남부의 사법 당국은 도무지 이 범행을 저지른 범인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미시시피 버닝
미시시피 버닝

마침내 사건이 일어난 지 수십 년이 지나서야, 일반인들의 끈질긴 조사 끝에 킬런을 비롯한 일당의 신원이 밝혀졌다.  다행히 미시시피식 정의 스토리의 끝은 해피 엔딩이었다. 그는 재판 끝에 60년형을 받았다. 그는 교도소에서 잘 지내다가 수감된 지 13년 만에 94세의 나이로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영화 “미시시피 버닝”은 바로 이 사건을 소재로 만든 것이다.

킬런의 처벌은 미국법에 살인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없었으므로 가능했다. 비록 매우 늦었지만, 그를 처벌하여 정의가 실현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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