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사람이 진영을 선택하지만 나중에는 진영이 사람을 조종한다.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더 나은 생활을 요구하는 쿠바 민중의 시위가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좌파들의 입장이 주목을 끌고 있다. 좌파가 쿠바 사태를 보는 시각은 복잡하다. 그동안 좌파들은 민중의 선택권과 항쟁권을 강조해왔지만, 그것은 우파가 집권할 때의 이야기이다.
북한은 7월 16일 외무성 담화를 통해 쿠바 사태를 “외세의 배후 조종”으로 규정짓고, 미국을 향해 쿠바에 대한 내정 간섭을 그만두라고 요구했다. 한 마디로 북한은 이번 사태를, 순진한 쿠바 국민들이 미국의 꾐에 빠져, 지상 낙원인 쿠바에서 투정부리는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좌파 정치인 버니 샌더스는 그 동안 쿠바의 공산 정권을 찬양하고 미국의 적대적인 쿠바 정책을 비판해왔다. 늘 모든 현안에 대해 재빠르게 논평해오던 버니 샌더스는 이번에 쿠바 사태가 터지자, 한 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샌더스의 침묵에 대해 불만을 가진 여론이 끓어오르자,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지만, 쿠바 정권에 폭력을 쓰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동시에 미국이 경제 제재를 해지해야 한다는 이른바 양비론을 들고 나왔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버니 샌더스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민주당 소속으로 네 명을 하원에 진출시킨 “미국민주사회자 (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들은 성명을 내고 쿠바 공산주의자들과 쿠바 혁명에 대한 연대를 선언했다. 지난 번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미국내 유력 흑인 인권 단체로 자리잡은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 (BLM, Black Lives Matter)” 조직은 이 와중에 쿠바 혁명의 거물 카스트로를 칭송하고, 미국의 대 쿠바 경제 제재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해 더 큰 논란을 빚고 있다. (참고 기사) 이에 대해 BLM이 드디어 인권 단체의 가면을 벗고 좌파 정치 단체의 노릇을 하는 것이라는 비난이 미국 전역에서 쇄도하고 있다.
쿠바 사태에 대해 전 세계에서 좌파들은 일치 단결하여, 이 모든 문제가 미국의 음모와 경제 제재 때문이며, 공산주의나 공산주의 정권의 잘못은 아니라고 강변한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제 4 인터네셔널”이라고 결정한 것이 아닐까? 어떻게 모든 나라의 좌파들이 입을 모아 똑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좌파가 쿠바 사태를 보는 시각 은 다음과 같이 편향된 인식 위에 세워져 있다. 그들에게 우파 정권에 대한 국민의 저항은 고귀한 “민주화 운동”이고 “혁명”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민중에 대한 정부의 진압은 “악랄한 탄압”이며 “용서할 수 없는 인권 유린”이다. 하지만 좌파 정권에 대한 국민의 저항은 “어리석게 외국의 꾀임에 넘어간 자들의 멍청한 짓”이며 “반혁명 음모’이다. 그러한 민중에 대한 무자비한 정부의 진압은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자위권 행사”이다.
하지만 쿠바 사태의 본질은,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린 후, 권력의 맛을 알게 된 청년 공산주의자들이 그만 선을 넘은 데서 출발한 것이다. 그들은 애초의 마음은 잊고 쿠바를 무슨 가족이 운영하는 상점으로 만들어 버렸다. 처음에 그들이 걱정하던 민중은 지금 그들만의 행복을 위한 도구가 되어버린 신세에 분노하고 있다. 멋있는 시가와 베레모, 혁명 구호와 깃발이 지나간 자리에는 빈곤과 고통, 그리고 끔찍한 정치적 탄압만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지난 80년 동안 좌파들은 쿠바 문제를 미국의 탓으로 돌려왔다. 자기 합리화를 위한 좌파들의 레토릭이 현란하다는 것은 잘 알지만, 이쯤 되면 자기 진영에 대한 그들의 눈물겨운 충성이 어쩐지 가련하게 느껴진다. 과거에는 사람이 진영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이 오래 지속되면 진영이 사람의 영혼마저 잡아먹는 모양이다. 그런데, 어쩌랴. 이제 보니 쿠바의 공산주의 정권은 아무래도 오래 가기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