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정통성 논쟁을 보면서

여당의 정통성 논쟁을 보면서 (이미지: 걸리버여행기)
여당의 정통성 논쟁을 보면서 (이미지: 걸리버여행기)

여당의 정통성 논쟁을 보면서 송시열을 떠올렸다. 공자나 맹자처럼 위대한 성현에게만 붙인다는 “자(子)”자가 붙은 유학자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그는 조선 효종떄 이름을 날린 유학자 송시열이다.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송자 (宋子)라고 한다. 송시열이 얼마나 학식이 있고 훌륭한 분인지는 둘째 치고, 그가 자기의 목숨, 가문의 운명, 그리고 그를 따르는 도당의 미래까지 걸고 싸운 여러 논쟁이 무엇인지를 알면 사람들은 대개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참전했던 논쟁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문제, 예를 들어 북벌 문제나, 대동법의 시행 이런 것에 대한 논쟁이 아니다.

17세기에 두 차례나 일어난 이른바 예송논쟁(禮訟論爭)을 보면 효종과 효종비의 장례를 얼마나 오랜 기간동안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것이다. 그래, 뭐 나름 이유가 있었겠지. 학자들은 이 모든 문제가 인조의 장남이 아니었던 효종의 정통성 문제와 연관이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의 삶과는 전혀 관계없는 그런 입씨름하느라 시간을 다 보낸 이 시대 인물들을 보면, 문득 영국의 걸리버 여행기가 생각난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속 소인국 릴리퍼트에서는 사람들이 달걀은 크고 둥근 쪽으로 깨야 한다는 빅 엔디언, (Big-Endian) 즉 큰 모서리파와 작고 뾰족한 쪽으로 깨야 한다는 스몰 엔디언, (Small-Endian) 즉 작은 모서리파 이렇게 나뉘어서 각자 ‘달걀 깨는 방법’을 가지고 내전을 한다.

송시열을 비롯한 조선의 유학자들은 이른바 “정통성”을 꽤 좋아해서 아마 그런 예송 논쟁에서 지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하여간 정통성 좋아하다 나라가 망해도 서인 잔당들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았겠지. 그런데 요새 여당에서 대선 후보자들이 저마다 “김대중-노무현”의 적통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참고기사) 예송 논쟁이 시작된 1660년 이래 360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한국인에게는 그 “정통성” 이 중요한 모양이다. 

하지만 우파도 아니고 좌파가 케케묵은 정권의 정통성 논쟁을 하는 것은 너무 괴상하다. DJ-노무현 정권이 지나간 지가 언제인데, 후보들은 아직도 그 당시의 원칙에서 변하지 못했단 말인가? 여당의 정통성 논쟁을 보면서 느낀 점은 여당 후보자들은 새로운 시대의 비전으로 선거를 하지 않고, 과거의 추억을 팔아서 그 기억에 편히 묻어가려는 한다는 점이다. 어쩌다 이 나라의 대선이 추억팔이의 경연장이 되었는지? 다시 살아 와서 이 상황을 본다면 아마 그 꼴통이었다는 송시열조차 후손들을 나무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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