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아직도 빌 클린턴 시대를 잊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아직도 빌 클린턴 시대를 잊지 못하고 있다 (이미지: 클린턴과 르윈스키)

8월 19일은 미국의 제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이 태어난 날이다. 그는 1946년 8월 19일에 미국의 시골 애컨소 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현대 미국 대통령들 중에서도 꽤 유명한 대통령이다. 그가 대통령직을 퇴임한 지 벌써 20년이 되었지만, 미국은 아직도 빌 클린턴 시대를 잊지 못하고 있다.  

빌 클린턴은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또 지독히 운이 좋은 정치가였다. 미국 역사상 그처럼 행운을 타고 살아간 대통령은 별로 없다. 그가 재임한 1993년부터 2001년은 미국의 황금기였다. 그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소련 제국은 무너지고, 일본은 버블이 꺼졌으며 중국은 아직 미약한 나라였다. 경쟁자들이 없어지자 미국은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고, 세계의 경찰로서 막강한 힘을 휘두르게 되었다.

물론 공화당을 비롯한 미국의 보수파들은 클린턴씨의 임기 내내 그를 증오하고 그의 능력을 비웃었지만, 그의 재임 기간 중 미국은 매년 4% 성장을 하는 놀라운 성장률을 보였다. 그 덕에 1998년부터 2001년에는 미국 연방 정부의 재정이 흑자를 내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이 같은 흑자는 지난 1969년 이래 처음이었다. 또 경제 호황 탓에 그의 임기 중에 미국의 실업률은 3.9% (2000년) 부터 6.0%(2002) 사이를 기록했다. 그가 집권하기 전인 80 년대에는 최저 5.3% (1988년) 에서 최고 10.8%(1982년) 이었던 것을 보면 클린턴 시대는 그야말로 미국 경제의 전성기였다. 그 전까지 미국 공화당은 늘 경제는 공화당이 잘한다고 자랑했으나, 클린턴은 그런 공화당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그의 별명은 “뺀질이”였다. 그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쇼맨쉽에 강한 인물이었다. 그는 확실히 거짓말에 능한 사람이었고 나중에는 그가 뭐라고 하든 미국인들은 그를 잘 믿지 못하게 되었다. 그의 불안정하고 어떻게 보면 “교활한” 성격은 마치 리처드 닉슨씨를 연상하게 한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많다. 그 중에서도 가난하고 불행했던 어린 시절, 문제가 많았던 부모, 시골 출신으로 늘 외톨이였던 학창 시절 이런 점들이 있었는데, 아마 이런 점들은 닉슨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클린턴씨를 매우 유능한 정치꾼이자, 매우 나쁜 인간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관련기사: 트럼프 때문에 강제 소환된 닉슨 대통령 )

개인적으로 그는 늘 정치 자금 면에서 말썽이 있었고 게다가 폴라 존스씨 뿐만이 아니라 백악관 인턴이던 르윈스키씨 등 많은 여성들과 성추문이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케네디씨를 연상시키는 젊음과 패기가 있었고, 선거에는 재클린 보다 더 도움이 되었던 부인 힐러리가 있었다. 게다가 똑똑했던 그는 지미 카터와 같은 실수는 되풀이 하지 않았다. 그는 완고한 워싱턴 정가에 이상적이기 보다는 매우 현실적으로 접근하여, 우군을 많이 만들었다. 그런 점은 아마도 그의 개인적 능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클린턴씨가 워낙 경제 뿐만이 아니라 국제 문제도 잘 처리했기 때문에, 1996년 그가 재임에 도전했을 때 그의 적수가 될만한 인물은 공화당에서 찾기 힘들었다. 클린턴의 인간성과 그가 하는 정책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 지를 알던 공화당은 그를 진짜 증오했기 때문에 상원 의원 밥 도울씨를 내세웠다. 하지만 밥 도울씨는 너무나 무력했고 그 결과는 49.2% 대 40.7%로 민주당의 압승이었다. 미국 국민들은 클린턴을 좋아했다.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그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지지도를 누리며 퇴임할 수 있었고, 그의 아내 힐러리도 “좋았던” 클린턴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기억을 이용하여 훗 날 2016년에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미국은 아직도 빌 클린턴 시대를 잊지 못하고 있다 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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