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적에 대항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온건론으로 다른 하나는 강경론이다. 미국의 인종 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부커 워싱턴의 온건 노선 방식은 새롭게 재평가되고 있다.
온건론이란, 우리 측의 힘을 기를 때까지만이라도 상대와 직접적인 대결을 피하는 방식이다. 그 대신 당분간 상대를 적절히 비판하지만 극잔적인 행동은 하지 않고 공존공생하는 방법이다.
이에 비해 강경론은 온건론을 타협주의, 투항주의 또는 패배주의라고 비난하고, 직접적으로 적과 맞서는 방식이다. 강경론자들은 필요하면 폭력적 방식도 사용하여 상대를 힘으로 굴복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어느 것이 더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 가령 중국 공산당은 자기들이 힘이 약할 때는 굴욕을 참고 국민당과 국공합작을 하였지만, 힘을 기른 다음에는 국민당의 휴전 제안을 거부하고 전쟁을 계속해서 내전에서 승리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온건파, 백범 김구 주석이 강경파였다. 팔레스타인 단체 중 이스라엘과의 투쟁 문제에 있어서 PLO가 온건파, 하마스가 강경파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인종 문제에 대해서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온건파이고 말콤 엑스가 강경파였다. 유신 시대의 야당에서는 이철승씨가 온건파, 김대중 김영삼 씨가 강경파였다.
미국의 흑인들 사이에는 인종 문제에 대해 1960년대 이전에도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었는데, 온건파의 대표적 인물이 부커 티 워싱턴 (Booker T. Washington)씨였었다. 그는 흑인들이 먼저 힘을 기르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미국 여기 저기에 흑인 경제 단체를 조직하고 흑인 학교를 세웠다. 그는 폭력이나 정치적 방식으로는 인종 문제가 금방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장기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흑인들에게 돈과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한 참 시간이 지나 1960년대가 되자 흑인 사회에서도 그의 온건론을 맹렬하게 비난하는 의견이 주류가 되어, 그는 점차 잊혀졌다. 언제나 온건론자들은 욕을 먹는 법이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흑인 사회가 스스로의 힘을 기른 결과 1960년대 이후 그런 많은 변화가 가능한 것이 아니었냐고.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부커 워싱턴의 온건 노선 과 그의 공적이 다시 재평가되고 있으며, 미국의 흑인 사회에서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부쩍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