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독소불가침협정 체결의 의미

1939년 독소불가침협정 체결의 의미
1939년 독소불가침협정 체결의 의미

1939년 8월 23일, 전 세계는 긴급 뉴스를 듣고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세계 역사에 길이 남을 이 날, 극우 파시즘의 나라 나치 독일과 극좌 공산주의의 나라 소련이 불가침협정을 맺었다. 그 이후 세계 역사를 바꾼 1939년 독소불가침협정 체결의 의미 는 무엇이었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가장 큰 정치 세력은 극좌 공산당과 극우 나치당이었다. 칼 마르크스와 로자 룩셈부르크의 빛나는 전통의 독일 공산당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정치 세력이었다. 그러나 극우 나치당은 집권 과정에서 공산당을 철저히 탄압하고 절멸시켰다. 이 때 공산당은 히틀러가 가장 싫어하고 증오한 정치 세력이었다. 게다가 히틀러는 러시아인들을 “인간이하의 하등동물”이라고 부르며 경멸했다. 누가 보더라도 소련과 나치는 숙적이었다.

그러니 소련도 독일이 언젠가는 자기들을 공격할 것을 알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스탈린은 영국과 프랑스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소련과의 협상을 서두르지 않았다. 어차피 소련의 선택은 자기들이라고 믿었기에, 영국과 프랑스는 소련의 애타는 재촉에도 불구하고 우호 협정의 조건을 더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느닷없이 소련과 독일이 불가침 협정을 맺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독일과 소련이 손을 잡으면서, 이제는 오히려 영국과 프랑스가 대륙에서 고립되었다. 특히 프랑스는 동서 양쪽에 파시시트 국가인 스페인과 독일에 둘러 쌓였고, 독일은 배후의 걱정없이 서쪽 전선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1939년 독소불가침협정 체결
1939년 독소불가침협정 체결

독소 불가침 협정을 주도한 것을 보면 히틀러는 훗날 영미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군사적인 면에서나 외교적인 면에서 뛰어난 감각이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그는 나중에는 그런 감각을 잃어버린다.) 전쟁 초기에 그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1939년 독소불가침협정 체결의 의미 는 국가의 이익이었다. 숙적 소련과 손을 잡고 엄청난 물자를 얻은 다음 히틀러는 폴란드와 프랑스를 차례차례 점령하여 유럽을 석권했다. 

거창한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히틀러와 스탈린을 보면, 지금 이 나라의 처지가 떠오른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지난 조선 시대와 비슷하다. 시대착오적인 명에 대한 사대를 주장하다 병자호란을 자초한 당파 세력의 잔당들이 다시 탈레반처럼 되살아났다. 지금 낡아빠진 교조적 신념을 외치면서, 펄럭이는 반일의 깃발아래 죽창을 휘두르는 자들에 끌려 가는 이 나라의 앞날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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