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8월 23일, 중국군은 20만의 병력, 800여 대의 전투기 그리고 600여 문의 해안포를 동원해 대만의 영토인 금문도 (金門島)를 공격했다. 중국군은 손쉬운 승리를 자신했지만, 42일간의 전투끝에 대만군에게 패배하였다. 이 전투를 “진먼 포격전” 또는 “8.23 포전 (八二三砲戰 )”이러고도 한다. 1958년 금문도 전투의 교훈은 무엇일까?
1958년 금문도 전투는 결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미리 잘 짜여진 계획에 따라, 중국군 정예 병력은 맹렬한 포격후 상륙을 감행하려 했다. 이 것은 마치 제이차 세계 대전 중 사이판이나 오키나와에서 미군이 보여준, 교과서적인 상륙 작전이었다. 중국군의 압도적인 화력과 병력으로 인해, 중국군은 손쉽게 금문도를 점령할 줄 알았다. 금문도는 중국 샤먼과 불과 4Km떨어진 조그만 섬으로, 당시 이 섬을 지키는 대만군 병력은 9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전투가 시작되자 중국군은 울릉도의 두 배 정도 되는 이섬에 4만 발 이상의 폭탄을 투하하여 섬을 초토화했다. 이 때 현장을 취재 중이던 한국일보 특파원 최병우 기자가 현지에서 중국군 포탄에 순직했다.
중국 정부는 금문도 점령은 시간 문제라고 큰 소리를 쳤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대만군의 결사적 항전으로 중국군은 제공권과 제해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미 7함대가 근처에 있었지만, 직접 전투에 개입하지는 않았고 오직 대만군 혼자서 싸웠으나, 중국군은 적은 숫자의 대만군을 이기지 못했다.

이 전투 이전에 중국군은 한국 전쟁에서 미군을 상대로 대등하게 싸운 경험을 바탕으로 막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고, 반면에 대만군은 부패와 낮은 사기로 내전에서 패배한 오합지졸에 불과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전투로 인해, 대만군은 빗발치는 적의 포탄 속에서 침착하게 대응을 하여, 압도적인 적의 공세속에서도 승리를 만들어낸 강한 군대라는 이미지를 세계에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1958년 금문도 전투의 교훈은 분명하다. 전쟁에서 단순한 병력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나라를 지키려는 국민과 군대의 결연한 의지가 더욱 중요하다. 지금 아프간에서 미군이 치욕스런 철수를 한 이후, 중국이 대만을 매일같이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대만이 1958년에 할 수 있었다면, 지금 다시 못할 이유는 없다. 금문도 전투 승전 기념일을 맞아 대만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