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케네디의 이중적 모습

에드워드 케네디의 이중적 모습
에드워드 케네디의 이중적 모습 (이미지: 채퍼퀴딕 사건 현장)

2009년 8월 25일 미국 민주당의 거물이자 케네디 가문의 마지막 황태자 에드워드 케네디가 7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는 미국 진보 진영의 대부였고 기나 긴 정치 생활 도중 몇 번이나 대통령 후보에 오르내렸지만 결국 대통령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평생을 여성이나 소수 민족의 권리를 위해 싸운 전사이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헌신한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에드워드 케네디의 이중적 모습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한마디로 그는 뛰어난 정치가였고 또 나쁜 인간이었다.

에드워드 케네디는 잘 생겼고, 하버드 출신의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었다. 2차 대전 중에는 유럽 전선에서 복무했다. 그는 뛰어난 연설가였고 박학 다식한 지식인이었다. 거의 모든 정치적 아젠다에 대해 그는 자기만의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매우 근면하고 열정적이었다. 에드워드 케네디가 지나치게 진보적이라 그를 싫어했던 사람들조차, 그가 정치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인정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미국의 명문 가문인 케네디 가문의 후계자였다. 

그는 무려 47 년 동안 매서추세츠에서 상원 의원을 했다. 이 기록은 아마 전 세계에 유일할 것이다. 그는 바로 매서추세츠 주였고 매서추세츠 주는 바로 그의 영지였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매서추세츠의 상원 의원 선거는 그저 형식적이었고 47년 동안 감히 아무도 그를 공격할 수 없었다. 

상원에서도 모두들 테드 케네디 (에드워드 케네디)의 의견을 존중하였기 때문에 그는 사실상 미국 상원의 시저 역할을 했다. 그의 두 형들이 모두 암살된 후, 그는 케네디 가문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집안의 기대와 지역 구민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대선에 나갈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그 악명높은 1969년 채퍼퀴틱 사건 때문이다.

1968년 7월 18일 밤, 그는 29살의 예쁜 여비서와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인적이 없는 채퍼퀴딕 섬의 다리 위에서 강 아래로 추락했다. 나중에 그는 자기 차가 가드레일을 들이 받았다고 말했다. 물에 빠진 차에서 오직 그만 헤엄쳐서 살아 나왔고, 차에 갇힌 젊은 여비서 메리 조 코피친은 익사했다. 그는 차에 갇힌 여자를 두고 사라졌다가 그 다음날 경찰에 신고했다. 이상한 것은 근처에 민가가 있었는데도 테드 케네디가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그저 걸어서 멀리 멀리 현장으로부터 사라진 것이다. 나중에 그는 부주의한 운전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지만, 형식적인 2개월 형, 그것도 집행 유예를 받았다. 에드워드 케네디는 여비서를 구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것이 그저 자기의 “실수”라고 말했다.

메이 조 코피친
메리 조 코피친

결국 사건을 정리하면. 한 젊은 여성이 죽었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 여성이 임신 중이었다는 소문이 파다 했지만, 서둘러 매장되었으므로 진실은 알 수 없다. 에드워드 케네디가 비서를 임신시킨 후, 입을 막기 위해 일부러 죽였다는 소문이 비밀리에 퍼졌다. 하지만 죽은 여자의 가족들은 이상하게도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물고, 언론과도 접촉하지 않고 아무런 조사도 요구하지 않았다. 언론도 경찰도 또 어떤 정치인도 이 사건의 진상에 대해 입을 다물고 아무도 취재를 하지 않는 사이에, 모든 증거는 없어지고 이 사건은 서둘러 잊혀졌다.

도대체 이 사건을 덮기 위해, 케네디 가문이 총 출동되어 얼마나 심하게 권력과 협박과 돈, 그리고 마피아를 개입시켰을 지는 오직 상상만이 가능하다. 에드워드 케네디의 주변에서 일어난 수많은 성범죄는, 이렇게 그의 정치적 성공과 장기 집권을 위해 “조용히” 처리되었다. 아마, 그의 정치적 적들도 그가 대선에만 나오지 않으면, 채퍼퀴딕 사건을 조용히 묻어주겠다는 약속을 한 모양이다.

평생을 민주주의와 인권, 특히 여성 인권의 증진을 위해 노력한 에드워드 케네디는, 죽을 때까지 채퍼퀴딕 사건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으며, 또 진실을 밝히지도 않았다. 그의 공과 사를 비교해보면 에드워드 케네디의 이중적 모습 이 뚜렷이 대비된다. 공적인 면에서 보면 그는 인권을 위해 애쓴 좋은 정치인이었다. 그리고 사적인 면에서 그는 참 나쁜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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