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1960년대는 마치 우리나라의 70년 대와 비슷하다. 수출 산업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다 보니, 대도시와 지방의 차이가 커졌다. 도시는 구미의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을 만큼 발전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골은 그대로 였다.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대도시로 올라온 수많은 시골 사람들은 도시에서 힘들게 살면서 고향을 그리워하였다. 이런 사회적 현상이 바로 일본의 인기 영화 시리즈 “남자는 괴로워”의 인기 비결 이었다.
“남자는 괴로워 (男はつらいよ)”는 1969년 부터 2019년까지 모두 51년 동안 모두 50편이 제작된 시리즈 물이다. 한 해에 한 편씩 개봉하였으므로, 일본인들에게 이 영화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일본인들은 매년 여름이나 연말에 개봉하는 이 영화 시리즈를 손꼽아 기다렸다가 보는 것이 매년 꼭 해야 하는 일종의 연례 행사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주인공 “토라”가 전국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그 곳 사람들과 친해지고 그 곳에서 열심히 해보려다 잘 안되는 이야기이다. 옆집의 진상 아저씨 같은 안 좋은 인상의 아츠미 기요시 (渥美 清, あつみ きよし)가 주인공 토라 (寅さん)역을 맡았다. 영화 속의 토라는 고생을 많이 해서 무식하고 거칠지만, 마음은 따뜻하고 착한 남자이다. 패전 이후 고생한 일본인들이, 이 영화를 통해 과거에 대해 위안을 받고 또 현재의 경제적 부흥을 자찬하는 마음이 아마 이 영화가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인 듯하다.
하지만 일본 영화가 다 그렇듯이 영화가 “감동”과 “교훈”을 너무 강요하다보니, 이 영화는 마치 70년대 한국에서 만들던 정부 홍보 영화 같아서 지금 보면 유치하다. 게다가 등장 인물들은 만약 지금 그런 주장을 했다가는 큰일 날만한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 가령” 여자는 그저 남자를 따라야 해” “여자 팔자는 다 남자에게 달린 거야”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가정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 같은 것도 여기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 듯 보인다. 역시 그 때 일본과 지금 우리나라의 정서는 많이 다른 것 같다.
게다가 영화의 곳곳에서 패전 이후 일본인들이 힘들게 살았던 부분을 강조하면서, 마치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인들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인 것처럼 왜곡하는 점은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가령 시골의 노인이 푸념을 하면서 “만주에서 고생해서 일구었던 땅을 다 뺐기고 빈손으로 귀국했을 때 죽고 싶었어” 이런 말을 하는데, 사실 이런 말은 중국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는 왜곡이다.

한편, 1960년대 우리나라에는 고 김희갑 선생과 고 황정순 여사가 주연했던 “팔도강산” 영화 시리즈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 시리즈는 “남자는 괴로워”와 포맷이 비슷한 것 같다. 두 영화 모두 전국을 돌아다니며, 과거와 비교해 발전한 나라를 보고 감격하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팔도강산”이 1967년에 처음 나온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일본이 우리 것을 베낀 것 같다. 다만, “팔도강산” 시리즈가 좀 더 노골적으로 홍보 의도를 드러내는 데, 그것은 아마도 당시 우리나라의 영화 지원 제도와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 시리즈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더 지독해서 알아듣기 어려운 일본의 지방 사투리, 그리고 지금은 볼 수 없는 일본 시골 사람들의 인심, 지금 보면 너무 촌스런 일본의 대도시 풍경 (그리고 그 것을 엄청 자랑하는 일본인들), 이런 것들을 볼 수 있어 재미있다.
일본인들이 이 영화들을 볼 때면, 마치 지금 한국의 노인 세대가 70년대 드라마 “전원 일기”를 다시 볼 때 느끼는 과거의 향수를 느꼈을 듯하다. 1969년 8월 27일은 “남자는 괴로워”가 처음으로 일본에서 개봉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