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63년 8월 28일, 동북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일어난 국제적 전투였던 백강 전투가 끝났다. 지금의 금강 하구에서 일어난 이 전투에서 신라군과 당군이 힘을 합해서 백제부흥군과 왜군 연합군과의 백강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른바 백강 전투의 결과는 이후 동아시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런데 백강 전투는 그저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지금의 야당인 국민의힘이 백강전투에 대해 알아야 할 교훈 에 대해 말해 보자.
먼저, 백강전투에서 겉으로 보기에 백왜 연합군은 꽤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던 듯하다. 일단 동원한 병력의 숫자가, 비록 정확하지는 않으나, 신당 연합군에 비해 훨씬 많았다. 또 전투의 장소가 구백제땅이니, 현지에서 인력이나 물자의 보충이 쉬웠을 것이다. 게다가 동아시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고구려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찾겠다는 병사들의 사기가 충천했을 것이다.
하지만 백왜 연합군은 백강 전투에서 참패했다. 이후 백제 부흥군 세력은 궤멸되고, 왜군은 900년 뒤 임진왜란 때까지 한반도에 오지 못했다. 이로써 왜가 한반도와 유지해왔던 좋았던 관계는 영원히 끊어졌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째서 백왜연합군은 이 중요한 전투에서 패배했을까? 그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백제 부흥군 사이에 내분이 있었다는 점이다. 부흥군 지도 자들에 의해 명목 상의 지도자로 떠 받들여진 부여풍 왕자는 감자기 부흥군의 실질적 지도자였던 “귀실복신 (또는 복신)”을 처형하고, 스스로 실질적인 지휘권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마 그 과정에서 친복신계 장군들의 숙청도 당연히 이루어졌을 것이다. 파멸의 위기에 몰린 친복신계 병력들이 배신감에 치를 떨며 신당연합에 귀의했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아마 부여풍은 백강 전투의 승리를 자신했을 것이다. 백강 전투에서 신당연합군을 격파하면 다시 나라를 세울 수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되면 자기는 허울 뿐인 왕이되어 신하인 복신이 나라를 좌지우지 하게 되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또 복신 세력을 숙청해도 백강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을 것이다. 그래서 멍청한 부여풍은 부흥 운동의 핵심 인물인 복신을 전투를 앞두고 그렇게 제거했고, 그 결과 부흥 운동도 끝장나게 되었다.
내분은 언제나 최대의 적이다. 2020년 4월 15일 실시된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누가 봐도 선전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내분이 터져 나왔다. 비례대표는 물론 지역 후보 공천 문제를 두고, 당내에 추악한 싸움이 벌어져 지역에서 불과 84명 만 당선되는 결국 보수 정당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내고 말았다.
이 선거에서 참패한 야당은 원내 의석의 1/3도 차지 못하게 되어, 이후 정국에서 완전히 무시되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 모두가 당시 미래통합당과 그 위성 정당이었던 미래한국당의 지도부가 선거 결과에 자만했던 탓으로 보인다.
역사는 항상 예상되는 승리에 도취된 자들이 어리석은 짓을 하여 몰락하는 사례를 보여준다. 오늘날 국민의힘이 백강전투에 대해 알아야 할 교훈 은 절대 내분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백강 전투에서 백제 부흥군은 내부의 분열로 인해, 이길 수 있었던 전투에서 패배했다.
이제 보수진영은 보수부흥군의 운명을 결정한 대선을 앞두고 있다. 야당 진영 쪽에 있는 권력 투쟁에 눈이 먼 자들이 이 번 대선에서 또 다시 그런 바보짓을 또 한다면, 더 이상 보수 참패에 대해 적당한 변명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백강 전투에서 어처구니없이 패배한 뒤, 백제 부흥군의 지도부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오늘날 야당의 지도자들은 꼭 기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