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학살당한 한국인

관동대지진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학살당한 한국인
관동대지진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학살당한 한국인

1923년 9월 1일, 일본의 동부 지역을 급습한 대지진 (이른바 관동 대지진)이 일어났다. 이 지진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는데, 그 중에서도 관동대지진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학살당한 한국인 들이 수 만 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계사에는 민족 학살이 여러 번 일어났고, 근세에도 터키에 의한 아르메니아 학살,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 소련에 의한 폴란드 카틴 숲 학살 등 많은 학살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희생된 관동대학살은 이런 학살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다른 학살 사건들이 대체로 외국 정부나 군부에 의한 학살이라면, 관동대학살은 일본 민중에 의한 자발적 학살이었다. 말하자면, 한 나라의 민중이 다른 나라의 민중을 학살한 초유의 사건이다. 다른 어떤 역사에서도 어떤 국민들이 소수 국민들을 집단으로 학살한 사례는 없다. 굳이 비슷한 예를 찾자면 1921년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시에서 백인들이 저지른 흑인 학살 정도이다. 

지진으로 인한 혼란의 와중에 일본인들이 사태 수습은 미루어 놓고 이른바 “자경단”을 조직하여, 백주 대낮에 죽창이나 일본도와 같은 무기로 무장한 채 검문 검색을 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그 들은 아무나 검문을 하여 행색이나 발음이 수상한 사람들을 “조선인”이라고 단정하고 즉결 처분을 했다.

관동대지진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학살당한 한국인

이러한 만행이 보통의 평범한 일본인들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점에서 관동대학살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국민들 사이에 영원히 잊지 못할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가해자인 일본인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한다. 길을 막고는 한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십오엔 오십전 (쥬고엔 고짓센 じゅうごえんごじっせん)”을 해보라고 강요하고, 발음이 이상하면 그 자리에서 죽창으로 사람을 찔러 죽인 일본인들이 평소에는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였고 , 친절한 옆집 아줌마들이었다는 것을. 

해마다 9월 1일이 되면, 나라가 없어 어디 가서 하소연 할 곳도 없이 이국의 하늘아래 피를 흘리며 쓰러진 한국인들을 생각한다. 관동대지진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학살당한 한국인들을 생각하면 일본 국민들로부터 관동대학살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있어야 한일관계가 앞으로 나아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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