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벨렝코 중위의 망명사건

1976년 벨렝코 중위의 망명사건
1976년 벨렝코 중위의 망명사건

1976년 9월 6일 평화롭던 일본의 하코다테 공항에 갑자기 최신예 소련 전투기 미그 25기가 나타났다. 완전 무장한 소련 전투기가 착륙할 때까지, 일본은 물론 미국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이 날 냉전 시대 최대의 위기 중 하나였던 1976년 벨렝코 (Viktor Belenko)중위의 망명사건 이 시작되었다.

이 당시 일본에는 자위대는 물론 미 공군 최전방 기지가 곳곳에 설치되어 운영 중이었다. 하지만 벨렝코 중위의 미그 25는 그 모든 감시망과 정보망을 뚫고 보란 듯이 일본 공항에 착륙했다.

허를 찔린 일본과 미국은 경악했다. 만약 미그 25기 편대가 일본을 공격했다면, 아마 일본은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한 채 두들겨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노련한 일본 자민당 정부는 안보상 문제는 감추고 벨렝코 중위가 의거 귀순했다는 점을 부각하여 여론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솔직히 그 당시 미국은 소련의 최신예 전투기 미그 25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온전한 기체를 가지고 귀순해 왔으니, 미국으로서는 너무나 큰 선물이었다.

한편 일본으로서는 혹시라도 기체를 반환받기 위해 혹은 파괴하기 위해 최신예 소련 폭격기들이 날아 올까 봐 마음을 조리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자위대에 비상 경계령을 조용히 내린 후, 소련의 강경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조종사와 기체는 일단 미국에게 넘겨주었다.

미국은 미그 25기를 샅샅이 분해하여 조사한 후, 기체를 소련에게 돌려주었다. 당시 30살의 벨렝코 중위는 귀순 4일 만에 미국으로 가서, 미국 시민권을 따고 조용히 살았다. 그에게 어머어마한 보상금이 주어졌을 것이다.

소련은 일본이나 미국에 대해 강경하게 항의하였지만 의외로 보복을 하지는 않았다. 소련이 무너진 다음 벨렝코는 러시아를 방문해서 가족들과 친척들을 만났지만,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 지금도 미국에서 살고 있다.

1976년 벨렝코 중위의 망명사건 은 미국에게는 횡재였지만 방공 체제의 약점이 드러난 일본에게도 큰 충격이었고, 첨단 기술이 유출된 소련에게도 큰 손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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