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43명이 희생된 아티카 교도소 봉기

무려 43명이 희생된 아티카 교도소 봉기
무려 43명이 희생된 아티카 교도소 봉기

1971년 9월 9일,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교도소 폭동이 뉴욕주에 있는 아티카 교도소에서 시작되었다. 무려 43명이 희생된 아티카 교도소 봉기 는 그 이후 미국 사회와 미국의 교정 시스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주로 흑인이었던 뉴욕주 아티카 교도소의 22,000 여 수감자들은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가, 교도소 당국과 충돌을 빚었다. 그러자 과격해진 수감자들은 급기야 폭력을 사용하여  42명의 직원들과 교도관들을 인질로 삼고 교도소의 일부를 점령하였다.

이후 4일 동안 뉴욕주 당국과 수감자들 사이에 협상이 진행되었지만, 좀처럼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러자 당시 주지사이던 넬슨 라커펠라씨는 무장 경찰 병력을 투입하여 수감자들의 봉기를 강제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수감자들의 구역을 진입하던 경찰이 마구 쏜 총탄에 무려 43명이 죽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 중에는 10명의 직원들과 교도관들도 있었다. 경찰의 투입으로 결국 봉기는 진압되었지만, 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보인 폭력성은 두고 두고 문제가 되었다.  

이 사건에서 목숨을 잃거나 장애를 가지게 된 많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은 지난 50년 동안 뉴욕주의 사과를 요구해왔다. 뉴욕주는 2000년에 수감자 가족들과 합의하고 모두 800 만 달러를 지급했고, 2005년에는 직원 및 교도관 희생자 측과 1,200만 달러에 합의했다.

하지만 뉴욕주는 한 번도 무력 진압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고, 50년이 지난 지금도 희생자의 가족들은 끈질기게 뉴욕주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경찰이 과잉 진압을 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무려 43명이 희생된 아티카 교도소 봉기 에서의 희생자 숫자는 당시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은 이후, 교정 시스템의 개선과 수감자들의 대우가 획기적으로 변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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