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전쟁의 영웅 네이던 헤일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 네이던 헤일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 네이던 헤일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1776년 9월 10일, 롱아일랜드 전투를 앞둔 미군은 적군인 영국군의 후방에 침투하여 사정을 알아볼 척후를 구했다. 하지만 22살의 네이던 헤일 말고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 네이던 헤일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네이던 헤일은 꽤 좋은 집안의 잘생긴 아들이고 예일대학을 나온 수재였다. 독립전쟁의 와중에서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독립군에 지원한다. 그가 척후병으로 지원했을 때, 독립군은 꽤 힘든 상황이었다. 강력한 영국군은 지금의 뉴욕시에 주둔하여 호시탐탐 독립군을 노리고 있었다. 지난 번 전투에 패전한 워싱턴 장군은 이 번 전투를 꼭 이기고 싶었다. 그러려면, 적의 움직임을 아는 것이 중요했다.

이 때 영국군과 미군은 모두 국제법을 준수하고 있어서 설령 포로가 된다 하더라도 병사들은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군복을 입지 않고 정탐을 하는 척후병은 예외라서, 척후병은 발각되면 지체없이 사살되거나 처형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니 아무도 척후병으로 자원하지 않았던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네이던 헤일은 비밀리에 적군의 후방에서 적군의 움직임을 탐지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계속했다. 그러나 9월 21일쯤 네이던 헤일은 지금의 퀸즈 지역에서 영국군에게 체포되었다. 구금된 네이던 헤일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국군에게 부탁했던 성서나 목사와의 만남은 거부되었다. 다음 날, 지금의 맨하튼에 설치된 처형장에 끌러간 그는 교수대에서 침착하게 이렇게 말했다

“조국을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분할 뿐이다 (I only regret, that I have but one life to lose for my country)” (참고)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 네이던 헤일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앞으로 창창한 미래를 가질 수 있었던 불과 22살의 젊은이가 아직 세워지지도 않은 나라에 대해 저렇게 뜨거운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너무나 감동적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지금은 전쟁이 나면 부잣집 남자들은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후방에 남으려고 애쓰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지금 미국 대통령 바이든씨도 5번이나 입영을 연기해서 결국 베트남에 가지 않았다. (관련기사: 백악관 대변인의 멍청한 답변)하지만, 꼭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으로부터 무시되던 미국이 오늘날 저렇게 강국이 된 데에는 네이던 헤일과 같은 애국자들이 수도 없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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